구로구 원룸 계약 시간은 출근길 최단거리 계산이었다

구로구 원룸 계약 시간은 출근길 최단거리 계산이었다

구로구 원룸 계약 시간은 출근길 최단거리 계산이었다 도보 7분의 함정 원룸 계약서에 도장 찍을 때 생각했다. "이거 완전 이득이네." 회사까지 도보 7분. 지하철 환승 없음. 버스 시간표 볼 필요 없음. 아침 9시 50분에 일어나도 출근 가능. 월세 65만원, 관리비 7만원. 구로구 치고는 비싼 편이지만 계산해봤다. 지하철 정기권 한 달 6만원. 왕복 2시간 절약. 한 달 40시간. 시급으로 환산하면... 뭐 어쨌든 이득이다. 부동산 아저씨가 "회사 다니세요?" 물었을 때 "바로 앞 건물이요" 했더니 웃으셨다. "젊은 친구들 다 그렇게 구해요. 근데 1년 뒤에 이사 간다니까."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출근길 7분의 변화 첫 달은 천국이었다. 9시 50분 기상. 10분 씻고 입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 회사 도착 9시 59분. 완벽한 시스템. 지하철 탈 때는 출근길에 웹툰 봤다. 음악 들었다. 멍 때렸다. 그게 하루 시작 준비 시간이었던 거다. 지금은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회사 건물이 보인다. 창문 열면 우리 회사 6층 불빛. 누가 야근하는지도 보인다. "아, 3팀 또 야근이네." 출근길 7분 동안 머릿속 정리 시간 없음. 마음의 준비 없음. 집 나서면 바로 업무 모드. 뇌가 적응 못 한다. 회사 근처 카페도 동료들 천지. GS25도 마주친다. "어? 벌써 퇴근?" "아뇨, 저녁 사러요." 이런 대화. 주말 편의점도 조심스럽다. 거리가 가까우니 "잠깐 회사 들를게" 가능해진다. 토요일 오후에 파일 수정하러 슬리퍼 신고 갔다. 일요일 저녁에 태블릿 가지러 갔다. 회사가 내 집 창고 같다.퇴근길 7분의 저주 진짜 문제는 퇴근 후다. 회사에서 7시 퇴근. 집 도착 7시 7분. 숨 돌릴 시간 없이 원룸 문 연다. 회사 스트레스가 그대로 따라온다. 예전엔 지하철 40분이 버퍼였다. 회사 일 생각하다가 음악 들으면서 정리되고. 집 도착하면 "아, 집이다" 전환됐다. 지금은 전환 없음. 팀장이 "이 부분 내일까지" 한 말이 귀에 맴돈다. 7분 걸으면서 사라질 리 없다. 집 들어와서도 "내일 뭐부터 해야 하지" 생각한다. 저녁 먹고 나면 "지금 회사 가면 작업 2시간 할 수 있는데" 계산한다. 실제로 간 적도 있다. 밤 10시에 슬리퍼 신고 회사 가서 1시까지 작업. 집 가서 씻고 자고. 아침 되면 또 7분. 회사랑 집이 분리 안 된다. 물리적 거리 7분. 심리적 거리 0분. 금요일 저녁에도 회사 불빛 보인다. "아, 저 자리 내 자리네." 주말인데 출근한 기분. 창문 커튼 치면 답답하고. 안 치면 회사 보이고.거리 계산의 착각 통근 시간 단축은 맞다. 숫자로 보면 이득이다. 한 달 40시간 절약. 1년이면 480시간. 20일. 교통비 연 72만원 절약. 아침 여유 1시간 더. 객관적 이득 맞다. 근데 빠진 계산이 있었다. 출퇴근 시간은 전환 시간이었다. 회사 모드에서 개인 모드로. 일 생각에서 내 생각으로. 지하철 환승 짜증나도 그게 필요한 거였다. 7분은 전환하기엔 너무 짧다. 뇌가 "아직 회사 근처" 인식한다. 집이 회사 연장선. 휴식 공간이 아니라 대기 공간. 회사 스트레스 심할 때 "집 가서 쉬어야지" 생각했다. 예전엔 지하철 타면서 서서히 풀렸다. 지금은 집 와도 안 풀린다. 회사가 너무 가깝다. 주말에 멀리 나가고 싶어진다. 홍대, 강남, 어디든. 구로구 벗어나고 싶다. "회사 근처 아닌 곳"이 목적지. 거리 자체가 스트레스. 동네 카페에서 작업하다가 팀장 마주쳤다. "오, 여기서 뭐 해?" "개인 작업이요." 어색했다. 회사 근처엔 나만의 공간이 없다. 1년 뒤 이사 가는 이유 부동산 아저씨 말 이해한다. "1년 뒤에 이사 간다." 회사 가까우면 편하다. 아침 여유롭다. 점심시간에 집 와서 쉴 수도 있다. 객관적으론 좋다. 근데 퇴근이 퇴근 같지 않다. 주말이 주말 같지 않다. 집이 집 같지 않다. "회사 근처 산다" 말하면 다들 "좋겠다" 한다. 통근 지옥 겪는 사람들 보면 미안하기도 하다. 실제로 편하긴 하다. 근데 매일 저녁 회사 불빛 본다. 누가 야근하는지 안다. 금요일 밤에도 회사 생각난다. 토요일에 슬리퍼 신고 회사 간다. 거리가 가까우면 경계가 흐려진다. 일과 삶의 경계. 회사와 집의 경계. 업무와 휴식의 경계. 지하철 40분이 아까운 게 아니었다. 필요한 거리였다. 적정 거리의 발견 요즘 생각한다. 이사 갈까. 회사에서 30분 거리. 지하철 4정거장. 환승 한 번. 그 정도면 딱이지 않을까. 출근길 30분에 할 것들. 어제 작업 머릿속 정리. 오늘 할 일 우선순위. 레퍼런스 몇 개 훑어보기. 음악 들으면서 모드 전환. 퇴근길 30분에 할 것들. 회사 일 정리. 내일 생각 조금. 그리고 지우기. 웹툰 보기. 멍 때리기. 집 도착하면 완전히 끄기. 30분이면 회사 불빛 안 보이는 동네. 편의점에서 팀장 안 만나는 거리. 토요일에 회사 생각 안 나는 거리. 가끔 약속 있으면 회사에서 바로 가면 된다. 급하면 택시 타도 2만원 안에. 완전히 먼 것도 아니고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통근 시간 아깝다"는 말 이해한다. 실제로 아깝다. 근데 그 시간이 버퍼다. 쿠션이다. 필요한 거리다. 회사 도보 7분은 너무 가깝다. 일상이 회사한테 먹힌다. 계약서의 빠진 항목 원룸 계약할 때 따졌던 것들. 보증금, 월세, 관리비, 옵션, 층수, 채광, 방음, 교통. 빠진 항목. 심리적 거리. 회사 가까우면 월세 아낄 수 있다는 계산. 시간 아낄 수 있다는 계산. 다 맞는 말이다. 근데 "퇴근 후에도 회사 생각나는 스트레스" 항목은 없었다. "주말에 회사 불빛 보이는 우울함" 비용은 없었다. "토요일에 슬리퍼 신고 출근하게 되는 위험" 계산은 안 했다. 숫자로 나오는 것만 계산했다. 시간, 돈, 거리. 숫자 안 나오는 건 생각 안 했다. 마음의 여유, 전환 시간, 경계. 지금 알았다. 출퇴근은 낭비가 아니라 필요다. 거리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도보 7분 원룸 계약. 통근 시간으론 성공. 삶의 질로는 실패. 다음 계약은 다르게 할 거다. 회사에서 30분. 그 정도가 적정선.집과 회사 사이,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다. 7분은 너무 가까웠다.

게임 동아리 선후배들과의 술자리: 업계 정보 교환의 장

게임 동아리 선후배들과의 술자리: 업계 정보 교환의 장

6시 30분, 홍대입구역 칼퇴했다. 드물게. 선배가 단톡에 "오늘 모이자" 던져서 나왔다. 동아리 선후배 6명. 모두 게임 회사. 1년에 2~3번 보는 사람들. 그런데 편하다. 역 앞 이자카야. 자리 잡으니 7시. "요즘 어때?" 시작은 항상 이렇다."어디 회사냐"는 질문의 무게 신입 후배가 왔다. 작년에 취업했다고. "형들, 저 N사 다녀요." 테이블에 침묵 3초. N사. 업계 1위. 연봉 6500부터 시작한다는 그곳. "오, 거기?" 선배가 웃는다. "힘들지? 거기 야근 장난 아니라며." 후배가 고개 끄덕인다. "네, 근데 배우는 건 많아요." 나는 맥주만 마신다. 우리 회사는 중견. 5000에서 시작했다. 1500 차이. 크다.급여 얘기는 조심스럽게 두 잔 들어가니 본론이다. "너네 회사 연봉 어때?" 선배가 던진다. 5년차. "나 6800." 대기업 다니는 선배. "나 5500." 중견 다니는 동기. "5000..." 나. 후배가 눈치 본다. "저... 6500이요." 신입이 나보다 많다. 씁쓸하다. 그런데 예상했다. 회사 규모가 곧 급여다. 이 바닥에서. "근데 거기 보너스 없잖아." 동기가 말한다. "우린 출시하면 300~500 나와." 위로인지 사실인지 모르겠다. 복지 비교는 끝이 없다 이야기는 복지로 넘어간다. "우린 점심 회사서 줘." N사 후배. "택시비도 나오고, 야근하면 저녁도." "헬스장도 사내에 있어요." 우리 회사? 점심은 각자. 택시비는 10시 넘어야. 헬스장은 근처에 등록했다. 내 돈으로. "대신 넌 11시까지 박히잖아." 선배가 웃는다. "우린 7시면 나가." 후배가 고개 끄덕인다. "네... 그건 맞아요." 트레이드오프. 항상 있다. 돈 vs 시간. 배움 vs 여유.컨셉 이야기로 신난다 술 세 잔째. 진짜 얘기가 나온다. "너네 요즘 뭐 그려?" 대기업 선배가 묻는다. "모바일 RPG 캐릭터." 내가 답한다. "아, 그거. 티저 봤어. 퀄 좋던데." 이 순간 기분이 좋다. 급여 얘기할 땐 쪼그라들었는데 그림 얘기하니까 펴진다. "근데 기획이 맨날 바뀌어서..." "아, 우리도. 지난주에 캐릭 5개 엎었어." "ㄹㅇ? 미쳤네." 고통 공유. 위로가 된다. 다들 똑같구나. 싶어서. 동기가 태블릿 꺼낸다. "이거 봐봐. 어제 그린 건데." 모두 모인다. 화면 들여다본다. "여기 터치감 좋은데?" "실루엣 확실하네." "근데 발 비율이..." 5분간 크리틱. 즐겁다. 회사에서 하는 리뷰랑 다르다. 순수하게 그림만 본다. 정치 없이. AI 이야기는 늘 나온다 후배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형들, AI 어떻게 생각하세요?" 테이블이 조용해진다. 다들 생각이 있다. 말하기 조심스러운. "우리 팀에 AI 담당 생겼어." 대기업 선배. "배경은 이제 AI로 뽑고 우리가 수정." "빨라. 진짜. 하루 걸릴 거 1시간." 나는 복잡하다. "근데 그럼 우리는?" 선배가 맥주 마신다. "모르겠어. 적응해야지." 동기가 다른 각도로 본다. "AI는 컨셉 못 잡아. 결국 방향은 우리가." "도구야, 도구. 포토샵처럼." 후배는 불안해 보인다. "저 이제 시작인데..." "괜찮아." 선배가 어깨 친다. "중요한 건 컨셉 잡는 능력." "그건 AI 못 배껴." 위로인지 사실인지. 우리도 모른다. 솔직히. 이직 이야기는 늘 있다 술이 더 들어간다. "나 이직 알아보는 중." 동기가 말한다. "어디?" "P사 오픈 포지션 떴어." 모두 관심 집중. "거기 연봉 어때?" "6000 초반 준대. 근데 프로젝트 좋아." "IP가 좋아서. 포폴에 넣으면 빛남." 이직. 이 바닥에서 연봉 올리는 법. 같은 회사서 매년 200씩 오르는 것보다 옮기면 500~1000 뛴다. "나도 생각 중이야." 내가 말한다. "3년 있었으니까 슬슬." 선배가 고개 끄덕인다. "그래, 경력 쌓였으면 알아봐." "5년차면 어디서든 원해." 후배는 듣고만 있다. 1년차. 아직 멀다. 정보 교환의 진짜 가치 이 자리의 핵심은 이거다. 급여 범위. 복지 비교. 회사 분위기. "K사는 칼퇴지만 성장 없대." "M사는 배우는 건 많은데 야근 지옥." "S사는 프로젝트 자주 엎어." 이런 정보. 검색해도 안 나온다. 블라인드에도 반쪽. 직접 만나야 진짜가 나온다. "너네 회사 중도 채용 어때?" "요즘 뽑아. 캐릭터 디자이너." "오, 지원해볼까?" 연결. 추천. 정보. 이 자리가 주는 것들. 나도 메모한다. 머릿속으로. "P사 연봉 6000 초반." "N사 신입 6500, 야근 많음." "K사 칼퇴, 성장 적음." 언젠가 쓸 데이터. 그래도 결국은 그림 10시 반. 2차 가자는 말이 나온다. 절반은 간다. 절반은 집. 나는 집 가는 쪽. 내일 오전 미팅 있다. "수고했어." 인사한다. "담에 또 보자." 집 가는 길. 지하철. 오늘 나온 정보 정리한다. 연봉, 복지, 이직. 중요하다. 현실이니까. 그런데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동기가 보여준 그림. "여기 터치감 좋은데?" 그 순간. 그림 얘기할 때가 제일 편했다. 돈 얘기, 회사 얘기 다 중요한데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건 그림이다.내일은 출근. 다시 현실. 그래도 오늘은 좋았다.

명절에 내려갈 때 부모님이 묻는 질문들

명절에 내려갈 때 부모님이 묻는 질문들

명절에 내려갈 때 부모님이 묻는 질문들 KTX 안에서 대구 가는 KTX 표를 샀다. 명절 4일 전. 15만 원. 이번에도 어머니가 물을 것이다. "게임 그림 그리는 거 아직도 해?" 5년차다. 아직도라니. 가방에 아이패드 넣었다. 부모님께 뭘 하는지 보여줄까 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소용없다. 작년에도 보여드렸다. "그래, 그림 잘 그리네. 그래서 월급은?" 월급은 세전 417만 원. 실수령은 340만 원. 서울에서 혼자 살면 빠듯하다. 대구 기준으로는 괜찮은 돈이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다. 30년 근속. 어머니는 교사셨다. 28년. 두 분 다 정년퇴직. 안정이 답인 세대다.집에 도착 "왔니?" "응." "밥 먹었어?" "기차에서." 짐 풀었다. 방은 그대로다. 고등학교 때 붙인 애니메이션 포스터. 미대 입시 때 그린 석고상 데생. 서울 올라간 지 7년인데 시간이 안 간다. 저녁이다. 아버지가 소주 따르신다. "회사는 잘 다니고 있고?" "네." "게임 회사가... 요즘도 잘 되나?" "회사마다 다르죠." 우리 회사는 작년에 게임 하나 출시했다. 흥했다. 보너스 300만 원 받았다. 그 얘기는 안 한다. 자랑 같아서. "근데 그 게임 그림 그리는 거는, 계속 할 수 있는 거야?" 시작됐다.'안정적인' 직업 어머니가 끼어드신다. "네 고등학교 동창 준호 있잖아. 걔 공무원 됐대." "응." "9급인데 지금 7급 됐대. 시험 또 봐서." 준호는 미술 못 그렸다. 수학도 못했다. 영어는 더 못했다. 근데 공무원 됐다. "준호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이제 안정적이래." 안정적. 그 단어 나왔다. "아들, 너도 공무원 시험 볼 생각은 없고?" "없어요." "게임 회사가 언제 망할지 모르잖아." 설명할까 말까 고민했다. 우리 회사는 직원 200명이다. 작년 매출 300억. 5년 내에 망할 확률은 낮다. 근데 설명해봤자다. 작년에도 설명했다. "그래도 공무원은 평생 직장이잖아." 평생 직장. 우리 세대한테 그게 뭔 의미인데.진짜 하는 일 아버지가 물으신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하는 건데?" "게임 캐릭터 디자인이요." "...캐릭터?" TV를 켰다. 아이패드를 연결했다. 우리 회사 게임을 보여드렸다. "이 캐릭터들요. 제가 디자인한 거예요." 화면에 여캐가 나온다. 검은 머리, 붉은 눈, 검은 옷. 뱀파이어 콘셉트다. 어머니가 화면을 본다. "...치마가 좀 짧지 않니?" 시작됐다. "게임이 원래 그래요." "요즘 게임이 다 이렇게 야한 거야?" "야한 게 아니라 판타지예요." 설명이 안 된다. 타겟 유저는 20~30대 남성이다. 과금 동력은 캐릭터 매력도다. '섹시함'은 디자인 요소 중 하나다. 이 말을 부모님께 할 수 있나.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그래도 네가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버니까, 그건 좋은 거지." "..." "근데 이게 계속 할 수 있는 일이냐는 거야." 계속 할 수 있냐는 질문 진짜 답은 모르겠다. 5년차까지 왔다. 10년차까지 갈 수 있을까? 15년차는? 업계 선배 중에 15년차는 본 적 없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프리랜서가 됐거나. 다른 업종으로 갔거나. 아니면 팀장이 됐거나. 나는 팀장 체질이 아니다. 관리보다 그림 그리는 게 좋다. 그럼 15년 후엔? AI 얘기는 안 꺼냈다. 요즘 AI가 그림을 그린다. 프롬프트 입력하면 5초 만에 나온다. 퀄리티는 아직 사람보다 낮다. 근데 1년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5년 후에는? 10년 후에는? "계속 할 수 있어요."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그냥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으면 되는 거야. 꾸준히 다니기만 하면." 꾸준히 다니기만 하면. 게임 업계는 그렇게 안 된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팀이 해체된다. 게임이 망하면 대규모 구조조정이다. 작년에 옆 회사가 망했다. 직원 150명 중 100명 잘렸다. 아는 선배가 거기 있었다. 8년차였다. 지금 다른 회사 다닌다. 연봉은 2000만 원 깎였다. "꾸준히만 다니면 되니?" "...네." 연애는 하냐는 질문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어머니가 먼저 돌리신다.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응." "어떤 사람인데?" 여자친구는 비업계다. 회사원이다. 마케터. 연애한 지 1년 반. "회사 다니는 사람이요." "나이는?" "동갑." "집은 어디?" 서울 마포구. 부모님이랑 산다. 그 얘기는 안 했다. "서울이요." "결혼 생각은 있고?" 1년 반 사귀었는데 결혼은 먼 얘기다. 나는 월세 40만 원 원룸에 산다. 여자친구는 부모님 집에 산다. 결혼하면 전세가 필요하다. 서울 전세는 최소 3억이다. 나한테 3억이 없다. 부모님께 손 벌릴 수도 없다. 여자친구 부모님께도 미안하다. "아직 생각 안 해봤어요." "서른인데 생각을 해야지." 올해 서른이다. 동창들은 결혼 많이 했다. 준호도 작년에 했다. 청첩장 받았다. 축의금 5만 원 보냈다. 게임 원화가 평균 결혼 나이가 궁금하다. 찾아본 적 없다. 무서워서. 건강 챙기라는 말 저녁 먹고 설거지했다. 어머니가 내 손을 보신다. "손목에 뭐 찼니?" "보호대요." "왜?" "손목이 좀 아파서." 거짓말 반. 손목이 많이 아프다. 하루 10시간 그린다. 타블렛에 펜을 쥐고. 손목은 계속 같은 각도다. 작년부터 아팠다. 정형외과 갔다. "손목터널증후군 초기예요. 쉬세요." 쉴 수가 없다. 마감이 있다. 파스 붙이고 그린다. 진통제 먹고 그린다. 주말에도 그린다. 커미션 해야 한다.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몸 상하면서까지 할 일이야?" 할 일이다. 이게 내 일이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시작했다. 지금은 그림 그려야 살 수 있다. "괜찮아요. 쉬면 나아요." "병원은 갔어?" "다녀왔어요." MRI 찍으라고 했다. 30만 원이다. 아직 안 찍었다. 명절 마지막 날 서울 올라가는 날이다. 짐을 쌌다. 어머니가 반찬 주신다. 김치, 멸치볶음, 장조림. 무겁다. 고맙다. 현관에서 신발 신는다. 아버지가 나오신다. "잘 다녀라." "응." "몸 조심하고." "응." 뭔가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다. 잠깐 멈추신다. "...게임 그림 그리는 거. 네가 좋아서 하는 거면, 그냥 해." "..." "근데 너무 무리하지는 마라." 목이 멘다. "응." KTX 탔다. 창밖을 본다. 부모님은 내 일을 모르신다. 게임 원화가가 뭔지. 하루에 뭘 하는지. 얼마나 힘든지. 설명해도 모르신다. 세대가 다르니까. 근데 걱정은 하신다. 그걸 알면 됐다. 서울 도착 집 도착했다. 원룸이다. 6평. 반찬 냉장고에 넣었다. 짐 풀었다. 여자친구한테 카톡 보냈다. "도착" "ㅇㅇ 오늘 만날래?" "피곤해 내일" "ㅇㅋ" 씻었다.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 봤다. 회사 단톡방에 메시지 100개. 내일부터 다시 출근이다. 생각한다. 부모님 질문에 제대로 답한 게 있나. "게임 회사 계속 다닐 수 있어?" 모르겠다.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어?" 모르겠다. "그 일, 계속 할 거야?" ...모르겠다. 근데 내일 출근은 한다. 그림은 그린다. 마감은 맞춘다. 지금은 그게 답이다. 불 껐다.부모님이 이해 못 하시는 게 서운한 건 아니다. 나도 부모님 세대를 이해 못 한다. 그냥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 거다. 각자 최선을 다하면서.

저녁 7시에 퇴근? 마감 전에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진실

저녁 7시에 퇴근? 마감 전에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진실

저녁 7시에 퇴근? 마감 전에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진실 계약서에 적힌 퇴근 시간 입사할 때 계약서에는 "10:00 ~ 19:00"라고 적혀 있었다. 신입 시절엔 진짜 7시에 퇴근했다. 정확히는 7시 5분. 가방 챙겨서 나가면 7시 10분쯤 회사 문 나섰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마감 3개월 전이었다는 걸. 지금은 7시에 퇴근하면 눈치가 보인다. 아니,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7시면 이제 슬슬 디렉터 피드백이 들어오는 시간이다. "이 캐릭터 표정 좀 더 살려주세요." "실루엣이 약한 것 같은데요." "기획팀에서 컨셉 방향 바뀌었대요." 7시는 하루의 끝이 아니라 2라운드 시작이다.마감 2주 전의 풍경 마감 2주 전부터는 시간 개념이 사라진다. 오전 10시 출근. 점심 1시. 저녁 7시. 여기까진 정상이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다. 9시, 10시, 11시. 시계는 돌아가는데 사람은 못 나간다. 어제는 새벽 1시에 퇴근했다. 집 가서 씻고 누우니 2시. 알람은 8시 반. 6시간 반 잤다. 오늘은 10시 반에 겨우 나왔다. 내일은? 모른다. 금요일인데도 주말 출근 얘기가 나왔다. "토요일 오후에 한 번 모여서 리뷰하죠." 한 번이 3시간이다. 경험상 5시간이다.회사는 9시 퇴근을 야근으로 안 친다 재밌는 건 이게 공식적으론 야근이 아니라는 거다. 야근 수당? 없다. 연봉제니까. 대신 '마감 보너스'가 있다. 게임 출시하면 받는다. 출시가 내년 3월이면 보너스는 내년 5월쯤 나온다. 지금은 11월이다. 6개월 뒤다. 지금 매일 밤 11시까지 남아서 그리는 이 캐릭터가, 6개월 뒤 보너스로 돌아온다. 보너스가 500만원이라고 치자. 괜찮은 금액이다. 그런데 계산해보면 이렇다. 2개월간 매일 3시간 추가 근무. 주말 포함하면 60일 × 3시간 = 180시간. 시급으로 따지면 2만 7천원. 내 시급보다 싸다.7시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날 그래도 가끔은 7시에 나간다. 디렉터가 휴가 갔을 때. 기획팀이 다 외근 갔을 때. 빌드 데이(개발팀이 데이터 합치는 날)일 때. 이럴 땐 미련 없이 7시 땡 하고 나간다. 가방 챙기는 속도가 평소의 3배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것도 아깝다. 계단으로 뛰어 내려간다. 회사 밖 공기가 이렇게 좋았나 싶다. 7시 하늘이 이렇게 밝았나 싶다. 편의점에서 맥주 사서 집 가는 지하철이 천국이다. 근데 이런 날이 한 달에 2번 있을까 말까다. 주말도 없는 마감 시즌 마감 1개월 전부터는 주말 개념이 흐려진다. "일요일은 쉬자"는 팀장님 말씀. 고맙다. 진심이다. 근데 토요일은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토요일 오후 2시 출근.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전은 잤으니까. 근데 퇴근이 밤 10시다. 8시간 일했다. 평일이랑 똑같다. 일요일은 집에서 쉰다. 근데 저녁 8시쯤 메신저가 운다. "내일 아침 회의 전에 이거 수정 좀 부탁드려요." 그림 켜서 2시간 작업한다. 일요일 저녁 10시. 일주일이 다시 시작됐다. 정시 퇴근하는 다른 회사 친구들 대학 동기 중에 비게임 업계 간 친구가 있다. 광고 쪽 일러스트레이터다. 프리랜서. 얘는 6시에 일 끝난다. 저녁 약속 잡으면 7시에 홍대에서 만난다. 나는? 7시 반에 "미안 좀 늦을 것 같아"라고 문자 보낸다. 9시에 "진짜 미안 오늘 못 갈 듯"이라고 또 보낸다. 약속을 세 번 연속 취소하면 친구가 말한다. "너 요즘 바쁘지? 마감 끝나고 보자." 고맙다. 이해해줘서. 근데 속으로는 생각한다. 게임 회사는 마감이 끝나면 다음 마감이 시작된다고. 몸이 기억하는 퇴근 시간 요즘은 7시가 되면 몸이 반응한다. 배가 고프다. 저녁 먹을 시간이니까. 피곤하다. 9시간 일했으니까. 근데 못 나간다. 디렉터가 아직 자리에 있다. 팀장도 있다. 옆자리 선배도 그리고 있다. 나만 나갈 수가 없다. 8시쯤 되면 적응한다. '오늘도 9시 퇴근이구나.' 9시쯤 되면 또 적응한다. '오늘은 10시네.' 10시쯤 되면 체념한다. '11시에는 나가자.' 11시에 겨우 집 도착하면 12시다. 씻고 밥 먹으면 1시다. 누우면 2시다. 알람은 8시 반이다. 이게 반복되면 몸이 기억한다. 7시는 퇴근 시간이 아니라는 걸. 건강검진 결과지의 경고 지난달에 건강검진 받았다. 간 수치 높음. 수면 부족. 거북목. 손목터널증후군 의심.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직업이 뭐세요?" "게임 회사 원화가요." "아... 야근 많이 하시죠?" "네." "좀 줄이셔야 해요." 줄이고 싶다. 진심으로. 근데 어떻게? 마감은 정해져 있다. 작업량은 정해져 있다. 인력은 안 늘어난다. 결국 시간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손목은 매일 밤 아프다. 파스 붙이고 잔다. 아침에는 괜찮다. 저녁 되면 또 아프다. 병원 가고 싶다. 근데 병원은 6시에 끝난다. 나는 7시에도 못 나간다. 이게 정상인가 싶을 때 가끔 의문이 든다. 이게 맞나? 이게 정상인가? 게임 만드는 게 좋아서 시작했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았다. 근데 요즘은 퇴근하고 그림 그릴 힘이 없다. 주말에 개인 작업 하려고 타블렛 켜면 손이 안 움직인다. 이미 한 주 동안 12시간씩 그렸으니까. 트위터에 팬아트 올리던 것도 한 달째 못했다. 팔로워들이 걱정한다. "요즘 바쁘신가봐요ㅠㅠ" 바쁘다. 정말 바쁘다. 근데 이게 바쁜 게 맞나? 아니면 회사가 이상한 거나? 주변 게임 회사 다니는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다들 비슷하다고 한다. "우리도 그래. 마감 시즌은 원래 그래." 그럼 이게 정상인가보다. 게임 업계는 원래 이런가보다. 그래도 버티는 이유 그럼에도 버틴다. 출시되면 다르다. 게임이 나오고 유저들이 "이 캐릭터 예쁘다"고 하면 다르다. 내가 그린 캐릭터가 움직이고, 사람들이 그걸 좋아하면, 그때는 보람이 있다. 마감 끝나고 회식할 때, 팀장이 "고생했다"고 할 때, 동료들이랑 "드디어 끝났다"고 할 때. 그때는 괜찮다. 힘들었던 게 다 의미 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번에는 덜 바쁠 거예요." 라는 기획팀 말을 믿으면서. 또 시작한다. 10시 출근, 7시는 꿈, 9시는 기본, 11시는 일상. 이게 게임 회사 원화가의 현실이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7시에 퇴근하고 싶다. 매일은 아니어도, 일주일에 3번만이라도. 저녁에 여자친구랑 밥 먹고 싶다. 영화 보고 싶다. 10시 영화가 아니라 8시 영화. 주말에 그림 연습하고 싶다. 회사 일 말고 내 그림. 손목 아프면 병원 가고 싶다. 휴가 내지 않고. 이게 꿈이다. 거창한 거 아니다. 그냥 계약서에 적힌 시간에 퇴근하는 것. 그게 꿈인 직장인이 있다는 게 이상하긴 하다. 근데 뭐 어쩌겠나. 이게 현실인걸.오늘은 금요일인데 토요일 출근이다. 주말이 짧다.

기획팀과의 신크: 내 머리로 생각한 것과 그들의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

기획팀과의 신크: 내 머리로 생각한 것과 그들의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

회의실 테이블 위의 침묵 화요일 오전 10시. 회의실. 모니터에 내 컨셉이 떴다. 어젯밤 11시까지 잡고 있던 여전사 캐릭터. 갑옷 디자인에 3시간 걸렸다. 망토 펄럭이는 느낌 살리려고 레퍼런스 50개 봤다. "음..." 기획팀장 입에서 나온 첫 소리. 좋은 "음"이 아니다. 5년 하면 안다. 이건 "별로"의 "음"이다. "컨셉은 좋은데요." 여기서 "~은 좋은데"가 나오면 끝이다. 뒤는 안 들어도 안다. "뭔가 우리가 생각한 느낌이 아니라서요." 왔다.우리가 생각한 느낌 "우리가 생각한 느낌"이란 게 뭔데. 기획서엔 "강인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전사"라고 써있었다. 그래서 갑옷은 투박하게, 얼굴은 부드럽게 그렸다. 포즈는 당당하게. 색은 차분하게. "좀 더 섹시하게 갈 수 없을까요?" 아. "근데 너무 노골적이면 안 되고요." 어. "강인한 건 유지하면서요." 응? 메모한다. "섹시 + 강인 + 절제". 삼각형 그리고 물음표 세 개. 옆에 앉은 김 과장이 덧붙인다. "참고로 타겟 유저층이 20대 후반 남성이라서요." 알아요. 그거 알고 그렸는데요. "근데 여성 유저도 무시 못 하니까요." 그럼 뭘 그려요. "그 밸런스가 중요한 거죠." 네. 밸런스. 중요하죠. 회의 끝나고 자리 돌아왔다. 모니터 껐다 켰다. PSD 파일 다시 열었다. 레이어 150개. 어제 내 6시간. 휴지통에 넣진 않았다. "버림" 폴더에 옮겼다. 언젠간 쓸 수도. 머릿속 이미지와 기획서 사이 점심시간. 식당 가는 길에 신입 원화가 물어봤다. "선배님, 기획서랑 다르게 그리면 안 돼요?" "응. 안 돼." "그럼 기획서대로만?" "그것도 아니야." "...네?" 설명해줬다. 기획서는 방향이다. 북쪽으로 가라는 거다. 근데 어떻게 가는지는 안 써있다. 걸어갈지 뛰어갈지 우리가 정한다. 문제는 기획팀 머릿속엔 이미 완성된 그림이 있다는 거다. 근데 그걸 말로 표현 못 한다. "강인하면서 여성스러운"같은 말로 포장한다. 우리는 그 말을 해석해서 그린다. 근데 기획팀이 생각한 거랑 다르다. "아 이게 아닌데." 그럼 다시 그린다. 또 다르다. "음, 거의 왔는데." 세 번째쯤 되면 맞다. "오! 이거예요!" 그게 처음 내가 그린 거랑 별 차이 없을 때도 있다. "그럼 처음부터 이렇게 그리시죠?" 못 그려. 기획팀 머릿속이 뭔지 몰라서.그 다음날 아침 수요일 오전 9시 50분. 출근했다. 커피 뽑았다. 자리 앉았다. 어제 회의 내용 다시 봤다. 메모장에 끄적인 키워드들. "섹시", "강인", "절제", "밸런스", "타겟층". 레퍼런스 다시 모았다. 핀터레스트 1시간. "female warrior sexy elegant"로 검색. 나온 건 다 코스프레 사진이다. 아트스테이션으로 넘어갔다. 여기가 낫다. 프로들 작업물 보면 힌트가 있다. 어제 내가 그린 거 다시 켰다. 뭐가 문제였나. 갑옷이 너무 투박했나. 비율이 안 맞나. 표정이 딱딱한가. 30분 봐도 모르겠다. 그냥 다시 그린다. 새 캔버스. 러프부터. 이번엔 갑옷을 좀 줄였다. 어깨랑 가슴 부분만 남기고 팔은 노출. 허벅지도 살짝. 근데 너무 노골적이면 안 된다고 했으니까 망토를 길게. 포즈를 바꿨다. 어제는 정면 직립이었다면 오늘은 살짝 비틀었다. 검은 어깨에 메고. 한 손은 허리에. 표정도 수정. 어제는 무표정이었다면 오늘은 미소. 근데 방긋 웃는 게 아니라 비웃는 느낌. "강인함" 살리려고. 3시간 걸렸다. 러프 완성. 팀장한테 슬랙 보냈다. "1차 수정본입니다." 답장 왔다. "오후에 봐요."상상력의 간극 오후 3시. 다시 회의실. 모니터에 수정본 띄웠다. 팀장이 턱을 괴고 봤다. 김 과장도 봤다. 기획팀 막내도 봤다. 10초. 20초. "오." 좋은 "오"다. 이건 안다. "이게 낫네요." 왔다. "근데 표정이 좀 세 보여서요. 조금만 부드럽게 갈 수 있을까요?" 네. 갈 수 있죠. "그리고 망토가 너무 길어서 실루엣이 무거워 보이는데, 짧게 해도 될까요?" 네. 되죠. "갑옷 색상도 좀 밝게요. 지금은 너무 어두워서 답답해 보여요." 네네. 밝게요. 메모했다. "표정 부드럽게", "망토 짧게", "색상 밝게". 회의 끝나고 나왔다. 복도에서 숨 쉬었다. 괜찮다. 리비전 2차. 보통이다. 6차까지 간 적도 있다. 자리 돌아와서 수정 시작했다. 표정은 입꼬리 내렸다. 망토는 무릎까지. 갑옷 색상은 채도 올리고 명도 올렸다. 1시간 만에 끝났다. 다시 보냈다. 30분 후 답장. "OK. 이거로 갑시다." 됐다. 파일 저장하면서 생각했다. 처음 그린 거랑 뭐가 달라진 건가. 갑옷 노출 늘고 망토 짧아지고 색 밝아졌다. 근데 "강인하면서 여성스러운 전사"라는 컨셉은 그대로다. 변한 건 표현 방식. 그게 기획팀이 원한 거다. 같은 말, 다른 그림. 내 머리와 그들의 머리 저녁 7시. 퇴근 준비하면서 오늘 작업 돌아봤다. 기획팀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도 고민한다. 유저가 뭘 좋아할지. 어떤 캐릭터가 팔릴지. 근데 그들은 그림을 못 그린다. 머릿속 이미지를 종이에 옮기지 못한다. 그래서 말로 설명한다. "강인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나는 그림은 그리는데 기획을 못 한다. 유저 취향, 시장 트렌드, 수익 구조.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회의실에서 만난다. 그들의 말과 내 그림이 부딪힌다. 한 번에 안 맞는다. 두 번, 세 번 조정한다. 그게 "신크"다. 처음엔 답답했다. "왜 내 그림대로 안 가는 거야." 3년 차까지 그랬다. 지금은 안다. 이게 회사다. 내 그림이 아니라 우리 게임이다. 그래도 가끔은 서럽다. 어제 밤 11시까지 붙잡고 있던 갑옷 디자인. "버림" 폴더에 쌓여간다. 언젠간 쓸 거다. 내 게임 만들 때. 프리랜서 되면. 1인 개발 하면. 그때까지는 참는다. 집 가서 개인 작업 켰다. 여기선 내가 기획자다. 맘대로 그린다. 그게 숨통이다.내일도 회의실. 또 맞춰볼 거다. 그들의 상상력과 내 손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