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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28 Dec, 2025
커미션 요청을 받으면 하는 생각: '이 정도면 프리랜서?'
커미션 요청을 받으면 하는 생각: '이 정도면 프리랜서?' DM이 왔다 퇴근하고 집에 왔다. 샤워하고 폰 켰더니 트위터 DM이 하나 있다. "안녕하세요. 팬아트 보고 연락드립니다. 캐릭터 일러스트 의뢰 가능할까요?" 이게 벌써 이번 달 세 번째다.지난달에는 다섯 건 들어왔다. 커미션 단가는 건당 30만원에서 50만원 사이. 많을 땐 80만원짜리도 있었다. 계산기를 두드린다. 한 달에 5건이면 250만원. 주말 다 써도 가능한 수치다. 회사 월급은 세전 416만원. 실수령은 360만원 정도. "이 정도면 프리랜서 해볼 만한 거 아냐?" 이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매번. 계산은 항상 달콤하다 엑셀을 켠다. 프리랜서 수입 시뮬레이션 파일. 이미 20번은 수정한 파일이다. 커미션 단가 40만원으로 잡는다. 보수적으로. 월 10건 받으면 400만원. 지금 월급이랑 비슷하다. 작업 시간은 건당 8시간. 주 5일, 하루 4시간씩 작업하면 한 주에 2.5건. 한 달이면 10건. 딱 맞아떨어진다. "가능한데?"여기에 상업 일러스트를 더하면 어떨까. 출판사나 인디게임팀 쪽. 건당 100만원에서 200만원. 한 달에 2건만 해도 200만원 추가. 그럼 월 600만원. 지금보다 훨씬 많다. "출근 안 해도 되고, 마감도 내가 조절하고."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현실은 계산기를 닫게 만든다 근데 여기서 멈춘다. 항상. 첫 번째 문제: 10건이 꾸준히 들어올까? 지금은 취미로 올리는 팬아트 덕분에 DM이 온다. 트위터 팔로워는 8000명이지만, 실제 커미션 의뢰는 한 달에 3~5건 정도. "만약 팬아트 그릴 시간이 없으면?" 커미션만 하면 포트폴리오 업데이트가 안 된다. 업데이트가 안 되면 노출이 줄어든다. 노출이 줄면 의뢰도 줄어든다. 악순환.두 번째 문제: 4대보험. 지금은 회사가 반 내준다. 프리랜서 되면 전액 내 돈이다. 건강보험만 한 달에 15만원. 국민연금까지 합치면 25만원. 그리고 세금. 3.3% 원천징수는 기본이고, 종합소득세까지 생각하면 실수령은 생각보다 적다. "400만원 벌면 실제로는 320만원 정도?" 지금이랑 별 차이 없다. 안정이라는 이름의 족쇄 세 번째 문제: 회사 이름. 지금 다니는 곳은 중견 게임사다. 포트폴리오에 쓸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 "○○ 온라인 캐릭터 컨셉 아트 담당" 이 한 줄이 주는 무게감이 있다. 프리랜서로 나가면 이런 줄 못 쓴다. 네 번째 문제: 마감 지옥. 회사 일은 힘들어도 책임이 분산된다. 기획이 바뀌면 "기획팀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랜서는? 모든 책임이 내 몫이다. 클라이언트가 "수정 좀요"라고 하면 무한 리비전 들어간다. 계약서에 명시 안 했으면 무료 노동이다. "리비전 5차에서 멘탈 나가는 거 진짜 싫은데." 다섯 번째 문제: 외로움. 지금은 옆자리에 선배가 있다. 막히면 물어본다. 점심도 같이 먹는다. 프리랜서는 하루 종일 집에서 혼자다. 클라이언트랑 통화하는 게 유일한 대화. "작년에 프리랜서 선배 만났는데, 사람 얼굴 보고 싶어서 카페 산다고 하더라." 그래도 DM을 확인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커미션은 받는다. 주말에 8시간씩 작업한다. 금요일 밤에 시작해서 일요일 저녁에 끝낸다. "완성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클라이언트가 만족한다. 입금 확인. 통장에 40만원이 들어온다. 회사 월급 외 수입. 이 돈으로 타블렛 할부금을 낸다. 또는 여자친구 생일 선물을 산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결국 못 나가는 이유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무서워서다. 지금은 매달 360만원이 통장에 꽂힌다. 확실하다. 예측 가능하다. 프리랜서는? 이번 달 500만원 벌어도 다음 달은 100만원일 수 있다. "그 불확실성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29살. 결혼도 생각해야 한다. 여자친구는 안정적인 남편을 원한다. 부모님도 "회사 다니는 게 낫지 않냐"고 하신다. "그림 취미로 하면 되잖아." 맞는 말이다. 틀린 말이기도 하다. 타협점을 찾는 중 그래서 지금 방식을 유지한다. 평일은 회사 일. 주말은 커미션. 4대보험은 회사가 내주고, 부수입은 커미션으로 챙긴다. 포트폴리오는 회사 프로젝트로 쌓고, 개인 작업은 SNS로 알린다. "완벽하진 않지만, 나쁘지도 않다." 한 달에 2~3건만 받는다. 무리하지 않는다. 번아웃 오면 안 되니까. 그리고 계속 상상한다. "만약 프리랜서 했다면?" 엑셀 파일은 아직 삭제 안 했다. 가끔 업데이트한다. "올해 팔로워 1만 되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 다음 DM이 올 때까지 오늘도 커미션 DM이 왔다. "캐릭터 전신 일러스트, 50만원 예산입니다." 계산기를 두드린다. 8시간 작업. 주말 이틀이면 가능하다. "가능합니다. 다음 주말에 시작할게요." 답장을 보내고 폰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이 정도면 프리랜서 해볼 만한 거 아냐?"답은 아직 모르겠다. 근데 오늘도 회사 간다.
- 16 Dec, 2025
저녁 7시에 퇴근? 마감 전에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진실
저녁 7시에 퇴근? 마감 전에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진실 계약서에 적힌 퇴근 시간 입사할 때 계약서에는 "10:00 ~ 19:00"라고 적혀 있었다. 신입 시절엔 진짜 7시에 퇴근했다. 정확히는 7시 5분. 가방 챙겨서 나가면 7시 10분쯤 회사 문 나섰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마감 3개월 전이었다는 걸. 지금은 7시에 퇴근하면 눈치가 보인다. 아니,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7시면 이제 슬슬 디렉터 피드백이 들어오는 시간이다. "이 캐릭터 표정 좀 더 살려주세요." "실루엣이 약한 것 같은데요." "기획팀에서 컨셉 방향 바뀌었대요." 7시는 하루의 끝이 아니라 2라운드 시작이다.마감 2주 전의 풍경 마감 2주 전부터는 시간 개념이 사라진다. 오전 10시 출근. 점심 1시. 저녁 7시. 여기까진 정상이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다. 9시, 10시, 11시. 시계는 돌아가는데 사람은 못 나간다. 어제는 새벽 1시에 퇴근했다. 집 가서 씻고 누우니 2시. 알람은 8시 반. 6시간 반 잤다. 오늘은 10시 반에 겨우 나왔다. 내일은? 모른다. 금요일인데도 주말 출근 얘기가 나왔다. "토요일 오후에 한 번 모여서 리뷰하죠." 한 번이 3시간이다. 경험상 5시간이다.회사는 9시 퇴근을 야근으로 안 친다 재밌는 건 이게 공식적으론 야근이 아니라는 거다. 야근 수당? 없다. 연봉제니까. 대신 '마감 보너스'가 있다. 게임 출시하면 받는다. 출시가 내년 3월이면 보너스는 내년 5월쯤 나온다. 지금은 11월이다. 6개월 뒤다. 지금 매일 밤 11시까지 남아서 그리는 이 캐릭터가, 6개월 뒤 보너스로 돌아온다. 보너스가 500만원이라고 치자. 괜찮은 금액이다. 그런데 계산해보면 이렇다. 2개월간 매일 3시간 추가 근무. 주말 포함하면 60일 × 3시간 = 180시간. 시급으로 따지면 2만 7천원. 내 시급보다 싸다.7시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날 그래도 가끔은 7시에 나간다. 디렉터가 휴가 갔을 때. 기획팀이 다 외근 갔을 때. 빌드 데이(개발팀이 데이터 합치는 날)일 때. 이럴 땐 미련 없이 7시 땡 하고 나간다. 가방 챙기는 속도가 평소의 3배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것도 아깝다. 계단으로 뛰어 내려간다. 회사 밖 공기가 이렇게 좋았나 싶다. 7시 하늘이 이렇게 밝았나 싶다. 편의점에서 맥주 사서 집 가는 지하철이 천국이다. 근데 이런 날이 한 달에 2번 있을까 말까다. 주말도 없는 마감 시즌 마감 1개월 전부터는 주말 개념이 흐려진다. "일요일은 쉬자"는 팀장님 말씀. 고맙다. 진심이다. 근데 토요일은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토요일 오후 2시 출근.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전은 잤으니까. 근데 퇴근이 밤 10시다. 8시간 일했다. 평일이랑 똑같다. 일요일은 집에서 쉰다. 근데 저녁 8시쯤 메신저가 운다. "내일 아침 회의 전에 이거 수정 좀 부탁드려요." 그림 켜서 2시간 작업한다. 일요일 저녁 10시. 일주일이 다시 시작됐다. 정시 퇴근하는 다른 회사 친구들 대학 동기 중에 비게임 업계 간 친구가 있다. 광고 쪽 일러스트레이터다. 프리랜서. 얘는 6시에 일 끝난다. 저녁 약속 잡으면 7시에 홍대에서 만난다. 나는? 7시 반에 "미안 좀 늦을 것 같아"라고 문자 보낸다. 9시에 "진짜 미안 오늘 못 갈 듯"이라고 또 보낸다. 약속을 세 번 연속 취소하면 친구가 말한다. "너 요즘 바쁘지? 마감 끝나고 보자." 고맙다. 이해해줘서. 근데 속으로는 생각한다. 게임 회사는 마감이 끝나면 다음 마감이 시작된다고. 몸이 기억하는 퇴근 시간 요즘은 7시가 되면 몸이 반응한다. 배가 고프다. 저녁 먹을 시간이니까. 피곤하다. 9시간 일했으니까. 근데 못 나간다. 디렉터가 아직 자리에 있다. 팀장도 있다. 옆자리 선배도 그리고 있다. 나만 나갈 수가 없다. 8시쯤 되면 적응한다. '오늘도 9시 퇴근이구나.' 9시쯤 되면 또 적응한다. '오늘은 10시네.' 10시쯤 되면 체념한다. '11시에는 나가자.' 11시에 겨우 집 도착하면 12시다. 씻고 밥 먹으면 1시다. 누우면 2시다. 알람은 8시 반이다. 이게 반복되면 몸이 기억한다. 7시는 퇴근 시간이 아니라는 걸. 건강검진 결과지의 경고 지난달에 건강검진 받았다. 간 수치 높음. 수면 부족. 거북목. 손목터널증후군 의심.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직업이 뭐세요?" "게임 회사 원화가요." "아... 야근 많이 하시죠?" "네." "좀 줄이셔야 해요." 줄이고 싶다. 진심으로. 근데 어떻게? 마감은 정해져 있다. 작업량은 정해져 있다. 인력은 안 늘어난다. 결국 시간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손목은 매일 밤 아프다. 파스 붙이고 잔다. 아침에는 괜찮다. 저녁 되면 또 아프다. 병원 가고 싶다. 근데 병원은 6시에 끝난다. 나는 7시에도 못 나간다. 이게 정상인가 싶을 때 가끔 의문이 든다. 이게 맞나? 이게 정상인가? 게임 만드는 게 좋아서 시작했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았다. 근데 요즘은 퇴근하고 그림 그릴 힘이 없다. 주말에 개인 작업 하려고 타블렛 켜면 손이 안 움직인다. 이미 한 주 동안 12시간씩 그렸으니까. 트위터에 팬아트 올리던 것도 한 달째 못했다. 팔로워들이 걱정한다. "요즘 바쁘신가봐요ㅠㅠ" 바쁘다. 정말 바쁘다. 근데 이게 바쁜 게 맞나? 아니면 회사가 이상한 거나? 주변 게임 회사 다니는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다들 비슷하다고 한다. "우리도 그래. 마감 시즌은 원래 그래." 그럼 이게 정상인가보다. 게임 업계는 원래 이런가보다. 그래도 버티는 이유 그럼에도 버틴다. 출시되면 다르다. 게임이 나오고 유저들이 "이 캐릭터 예쁘다"고 하면 다르다. 내가 그린 캐릭터가 움직이고, 사람들이 그걸 좋아하면, 그때는 보람이 있다. 마감 끝나고 회식할 때, 팀장이 "고생했다"고 할 때, 동료들이랑 "드디어 끝났다"고 할 때. 그때는 괜찮다. 힘들었던 게 다 의미 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번에는 덜 바쁠 거예요." 라는 기획팀 말을 믿으면서. 또 시작한다. 10시 출근, 7시는 꿈, 9시는 기본, 11시는 일상. 이게 게임 회사 원화가의 현실이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7시에 퇴근하고 싶다. 매일은 아니어도, 일주일에 3번만이라도. 저녁에 여자친구랑 밥 먹고 싶다. 영화 보고 싶다. 10시 영화가 아니라 8시 영화. 주말에 그림 연습하고 싶다. 회사 일 말고 내 그림. 손목 아프면 병원 가고 싶다. 휴가 내지 않고. 이게 꿈이다. 거창한 거 아니다. 그냥 계약서에 적힌 시간에 퇴근하는 것. 그게 꿈인 직장인이 있다는 게 이상하긴 하다. 근데 뭐 어쩌겠나. 이게 현실인걸.오늘은 금요일인데 토요일 출근이다. 주말이 짧다.
- 09 Dec, 2025
월요일 오전 10시 출근, 팀장님이 이미 3개의 피드백을 준 상황
월요일 오전 10시, 피드백 3개 금요일 저녁의 착각 금요일 오후 6시. 컨셉 3개 업로드했다. 전사 캐릭터 A안, B안, C안. 팀장님께 슬랙 드렸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7시에 퇴근했다. 주말 동안 피드백 올 거다. 월요일 아침에 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토요일은 여자친구랑 영화 봤다. 일요일은 개인 작업했다. 판타지 기사 팬아트. 트위터에 올렸더니 좋아요 300개 넘게 받았다. 기분 좋게 잤다. 월요일은 가볍게 수정 작업만 하면 되겠지.월요일 오전 9시 50분 지하철에서 슬랙 켰다. 팀장님 메시지. 어젯밤 11시. "디자님, 주말에 기획팀이랑 얘기했는데요." 심장이 내려갔다. "컨셉 방향 조금 바뀌었어요. 월요일 아침에 얘기해요." 아침에 얘기하자는 건 길다는 뜻이다. 조금 바뀌었다는 건 많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지하철 안. 사람들 많다. 나만 식은땀 났다. 10시 정각 자리에 앉았다. 모니터 켰다. 슬랙에 팀장님 호출. "디자님, 회의실 1분만요." 커피도 못 마셨다. 회의실. 팀장님, 기획팀장님, 아트디렉터님. 셋이 앉아 있다. "앉으세요. 금요일 컨셉들 잘 봤어요." 잘 봤다는 말 뒤에는 항상 '그런데'가 온다. "그런데 주말에 PD님이 방향 바꾸자고 하셨어요."피드백 1: 컨셉 전체 "전사 컨셉인데, 너무 정통 판타지예요." A안, B안, C안 모두 정통 판타지다. 기획서에 '중세 유럽 느낌의 전사'라고 써 있었다. "좀 더 현대적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사이버펑크 섞어서." 사이버펑크. 금요일에는 한 마디도 없었다. "갑옷은 유지하되, 네온 느낌? 그런 거요." 네온 갑옷. 머릿속으로 상상이 안 간다. "레퍼런스 좀 찾아볼게요." "네, 급하니까 오늘 중으로 러프만 보여주세요." 오늘 중으로. 월요일 하루 만에. 피드백 2: 실루엣 "그리고 실루엣이 약해요. 멀리서 봤을 때 임팩트가 없어요." 아트디렉터님이 말씀하셨다. "어깨 라인 키우고, 무기 크게 가져가세요." 어깨 키우면 목이 파묻힌다. 무기 키우면 비율이 이상해진다. "근데 이 캐릭터 민첩형 아니었나요?" "맞는데, 민첩해 보이면서도 강해 보여야 해요." 민첩하면서 강하게. 가늘면서 굵게. 말은 쉽다. "네, 다시 잡아볼게요."피드백 3: 디테일 기획팀장님 차례. "벨트 부분이요, 너무 심플해요. 뭔가 스토리가 있는 아이템을 달았으면." 벨트에 스토리. "예를 들면 전쟁에서 얻은 트로피라던가, 가문의 문장이라던가." 디테일 추가하면 작업 시간 2배다. 러프에 그런 거까지 넣으라는 건가. "그리고 색감이 너무 차가워요. 따뜻하게 가면 안 될까요?" 따뜻한 사이버펑크. 모순 아닌가. "따뜻한 네온...? 오렌지 톤으로 가볼까요?" "그렇죠! 오렌지, 노란색 계열. 따뜻하면서도 미래적인." 미래는 차가운 거 아니었나. 회의 종료 30분 회의 끝. 메모장에 적은 것들.사이버펑크 + 중세 어깨 키우기 무기 크게 민첩하면서 강하게 벨트 스토리 디테일 따뜻한 네온이게 뭔 소린지 모르겠다. "오늘 6시까지 러프 3안 부탁드려요." 6시까지. 지금 10시 반. 점심 빼면 6시간. 한 안당 2시간. "네, 최선을 다해볼게요." 최선이 아니라 기적이 필요하다. 자리로 복귀 자리에 앉았다. 커피 식었다. 전자레인지 돌리러 가기 귀찮다. 슬랙에 같은 팀 선배가 물었다. "회의 어땠어?" "방향 바뀜. 처음부터." "ㅋㅋㅋ 월요일의 맛." 웃긴지 모르겠다. 레퍼런스 검색 시작. 'cyberpunk medieval armor' 'neon knight' 'futuristic warrior warm color' 나오는 건 다 AI 그림이다. 퀄리티는 좋다. 레퍼런스로 쓰기엔 애매하다. 아트스테이션 뒤적였다. 비슷한 컨셉 찾았다. 중국 아티스트 작품. 3년 전 거. 저장했다. 러프 작업 시작 11시. 1안 시작. 사이버펑크 감성을 갑옷에. 네온 라인을 어디에 넣을까. 어깨 갑옷? 가슴? 팔? 일단 다 넣어봤다. 크리스마스 트리 됐다. 지우고. 네온은 포인트만. 어깨 갑옷 테두리. 가슴 중앙 한 줄. 실루엣 키우려고 어깨 넓혔다. 목 파묻혔다. 목 길이 늘렸다. 이상해 보인다. 비율 다시 잡았다. 12시. 1안 러프 완성. 마음에 안 든다. 어쩔 수 없다. 점심시간 12시 반. 팀원들이랑 식당 갔다. 냉면 먹었다. 후배가 물었다. "형 컨셉 어떻게 돼요?" "응, 다시." "또요? 금요일 거 괜찮았는데." "기획 바뀜." "아..." 다들 안다. 이게 일상이라는 거. 선배가 말했다. "나도 지난주에 UI 7번 갈아엎었어." 위로가 안 된다. 모두가 고통받는다고 내 고통이 줄지 않는다. 오후 작업 1시 반. 2안 시작. 1안보다 어깨 더 키웠다. 망토 추가했다. 실루엣 임팩트용. 무기는 대검. 1안보다 크게. 등신 대비 1:1.5. 들기 힘들어 보인다. "민첩하면서 강하게." 말이 안 된다. 그래도 그려야 한다. 벨트 디테일. 작은 파우치 3개. 가문 문장 메달. 뭔가 걸려 있는 것들. 3시. 2안 러프 완성. 1안보다 낫다.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 3안, 마지막 3시 반. 마지막 안. 1안과 2안의 중간으로 갔다. 어깨는 적당히. 무기는 한 손 반 검. 네온은 최소화. 갑옷 이음새에만. 망토는 짧게. 허리까지만. 벨트는 심플하게. 디테일은 나중에. 색감은 오렌지 베이스. 따뜻한 느낌. 네온은 청록색. 대비 효과. 5시. 3안 완성. 세 개 놓고 봤다. 3안이 제일 무난하다. 무난한 게 채택된다. 업로드 5시 반. 컨셉 3개 업로드. 팀장님께 슬랙. "러프 3안 올렸습니다." 답장 바로 왔다. "확인할게요." 10분 뒤. "3안이 좋네요. 이 방향으로 디테일 들어가세요." 역시 3안. "내일 오전까지 디테일 작업 가능할까요?" 내일 오전. 오늘 밤 야근 확정. "네, 해보겠습니다." 해보겠다는 건 하겠다는 뜻이다. 6시, 저녁 팀원들 하나씩 퇴근한다. 후배가 물었다. "형 퇴근이요?" "야근." "아... 고생하세요." 7시. 사무실에 나랑 선배 한 분. 선배도 UI 수정 중. 편의점 가서 삼각김밥 샀다. 참치마요 2개. 커피 한 캔. 자판기 커피 한 잔 더. 자리 돌아와서 먹었다. 야근 시작 7시 반. 디테일 작업 시작. 3안 러프 위에 레이어 쌓기. 갑옷 디테일. 흠집, 스크래치. 사용감 표현. 벨트 디테일. 파우치 하나하나. 금속 버클. 가죽 질감. 무기 디테일. 검날 문양. 손잡이 장식. 칼날 반사광. 네온 라인. 빛 번짐 효과. 글로우 레이어. 색상 보정. 망토 주름. 바람에 날리는 느낌. 움직임 표현. 9시. 얼추 나왔다. 배경 간단히. 그라데이션. 바닥 그림자. 전체 색보정. 채도 올리고. 명암 대비. 10시. 완성. 저장. PNG, PSD 둘 다. 백업 폴더에 복사. 팀장님께 슬랙. "디테일 작업 완료했습니다." 답장 없다. 퇴근하셨겠지. 내일 아침에 보시겠지. 11시, 퇴근 짐 챙겼다. 타블렛 끄고. 모니터 끄고. 불 끄고. 사무실 나왔다. 선배도 퇴근하셨다. 건물 밖. 11월 밤바람. 춥다. 편의점 들렀다. 맥주 한 캔 샀다. 집 가서 마실 거다. 지하철. 사람 없다. 앉아서 폰 봤다. 트위터. 주말에 올린 팬아트. 좋아요 500개 넘었다. 댓글 몇 개 읽었다. "그림 너무 좋아요" "색감이 따뜻해요" "캐릭터 매력 있어요" 고맙다. 이래서 그림 그린다. 회사 일은 또 다르다. 내 그림이 아니다. 기획 의도를 그리는 거다. 클라이언트는 팀장님이고 PD님이다. 그래도 월급 받는다. 생활 할 수 있다. 장비 살 수 있다. 개인 작업은 취미다. 돈 안 되도 그린다. 집, 12시 집 도착. 샤워했다. 맥주 땄다. 침대 앉아서 마셨다. 하루 정리. 금요일 컨셉 3개. 주말 사이 기획 변경. 월요일 아침 피드백 3개. 6시간에 러프 3안. 야근해서 디테일 완성. 이게 일상이다. 내일 아침. 팀장님이 확인하신다. 괜찮다고 하실까. 수정 또 나올까. 수정 나와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일이다. 맥주 다 마셨다. 캔 버렸다. 침대 누웠다. 천장 봤다. 손목 아프다. 내일도 그려야 한다. 핸드폰 봤다. 트위터. 팔로워 몇 명 늘었다. 개인 작업 생각했다. 판타지 기사 시리즈. 이어 그리고 싶다. 주말에 그릴까. 아니다. 주말에도 피드백 올 거다. 눈 감았다. 내일 또 월요일 같겠지. 화요일인데.월요일은 언제나 수정으로 시작한다. 금요일의 나는 너무 순진했다.
- 09 Dec, 2025
아트스테이션에서 발견한 나보다 잘하는 29살
밤 11시, 아트스테이션 퇴근하고 집에 왔다. 샤워하고 타블렛 켰다. 습관처럼 아트스테이션을 연다. 메인에 뜨는 그림. 클릭했다. 프로필을 본다. 29세. 나랑 같다.스크롤을 내린다 캐릭터 컨셉 10장. 전부 다른 프로젝트다. 실루엣이 명확하다. 컬러 밸런스가 완벽하다. 디테일은 살아있는데 과하지 않다. 라이팅이 이렇게 들어가면 이런 느낌이구나. 천 주름을 저렇게 처리하면 되는구나. 금속 재질감이 저 정도면... 내 그림 폴더를 연다. 비교한다. 한숨이 나온다. 경력은 3년 프로필에 적혀있다. 3년차래. 나는 5년인데. 그는 중국 회사 다닌다. 포트폴리오에 실린 게임 2개. 전부 출시됐다. 내가 작업한 프로젝트는 3개. 출시된 건 1개. 나머지는 엎어졌다. 내 탓은 아니다. 기획이 바뀌고, 투자가 끊기고, 회사 사정이 있었다. 그래도 포폴은 비어있다.새벽 1시 여전히 그의 그림을 본다. PSD는 없으니 레이어 구조는 모른다. 하지만 작업 순서는 보인다. 큰 면부터 잡았다. 그림자 영역을 명확히 구분했다. 디테일은 마지막에 포인트로 넣었다. 나도 안다. 이론은. 실전에서는 디테일부터 붙잡는다. 전체를 못 보고 부분만 본다. 그러다 시간 없어서 러프로 제출한다. 팀장이 말한다. "완성도가..." 안다. 댓글을 읽는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전부 칭찬이다. "Amazing work!" "How long did this take?" "Do you have tutorial?" 튜토리얼이 있을 리 없다. 저 정도면 그냥 손에서 나온다. 나도 튜토리얼 본다. 유튜브에 수십 개. 북마크에 백 개 넘게 저장돼있다. 본 적은 있다. 따라한 적은 없다. 시간이 없어서. 아니다. 핑계다.새벽 2시, 그림을 그린다 타블렛을 연다. 새 캔버스. 오늘은 제대로 그려본다. 그의 방식대로. 큰 면부터. 실루엣 먼저. 30분 지났다. 뭔가 이상하다. 지운다. 다시 그린다. 1시간. 여전히 이상하다. 채도가 높은가. 명도가 문제인가. 구도를 바꿔볼까. 레퍼런스를 찾는다. 핀터레스트, 구글, 다시 아트스테이션. 레퍼런스만 2시간. 새벽 4시 그림은 반도 못 그렸다. 내일 출근이다. 10시까지. 5시간 자면 된다. 아니다. 씻고 준비하면 4시간. 그림을 저장한다. 파일명: "practice_0324_fail" 폴더에 비슷한 파일이 62개 있다. 전부 미완성이다. 출근길 지하철 졸리다. 어제 4시에 잤다. 핸드폰을 본다. 트위터. 타임라인에 또 누군가의 그림. 좋아요 5천. 잘 그렸다. 나보다. 언팔은 안 한다. 자극받으려고 팔로우한 거다. 자극받았다. 그래서 어젯밤 4시까지 깼다. 오늘 컨디션은 최악이다. 회사 도착 자리에 앉는다. 모니터를 켠다. 어제 작업하던 파일. NPC 컨셉 5종. 기획서를 다시 읽는다. "평범한 마을 사람들, 하지만 개성 있게" 모순이다. 평범한데 개성 있게. 그래도 그린다. 이게 일이다. 점심시간. 동료가 말한다. "어제 아트스테이션 봤어? 걔 미쳤더라." 본 사람이 나만은 아니구나. 오후 3시, 리뷰 팀장 앞에 앉았다. NPC 컨셉 5종. 화면에 띄운다. 팀장이 스크롤을 내린다. 10초 정도. "음..." 이 음이 길면 별로라는 뜻이다. "괜찮은데, 좀 더 임팩트 있게 갈 수 있을까?" 있다. 시간만 주면. "네, 수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실루엣이 좀... 이 캐릭터랑 비슷해." 다르게 그렸는데. 팀장 눈엔 비슷한가보다. "다시 그려볼게요." 리비전 3차다. 같은 NPC에. 퇴근 후, 카페 집에 가기 싫다. 카페에 앉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노트북을 편다. 개인 작업. 커미션 2건 밀려있다. 마감은 이번 주. 하나를 연다. 캐릭터 전신 일러스트. 30분 그렸다. 손이 안 간다. 아트스테이션의 그 그림이 생각난다. 29살. 3년차. 나는 뭐하고 있나. 밤 10시, 집 샤워했다. 침대에 눕는다. 핸드폰을 본다. 다시 아트스테이션. 그의 프로필. 팔로워 15만. 내 트위터는 8천. 적은 건 아니다. 근데 저 숫자를 보면. 인스타그램도 확인한다. 같은 사람. 포스팅 200개. 전부 퀄리티가 일정하다. 꾸준함이 다르구나. 나는 일주일에 하나 올리기도 힘들다. 회사 일 하고 나면 기력이 없다. 핑계다. 또. 새벽, 다시 타블렛 앞에 앉았다. 어제 그린 파일. "practice_0324_fail" 이어서 그린다. 한 시간. 조금 나아졌다. 두 시간. 확실히 전보다 낫다. 저장한다. 파일명: "practice_0325_progress" fail에서 progress로. 작은 발전이다. 하지만 그 29살과 비교하면. 여전히 멀다. 내일도 그릴 거다. 모레도. 언젠가는. 아니다. 언젠가는 없다. 내일 더 잘 그리면 된다. 오늘보다. 그것만.같은 나이인데 이렇게 다르다. 그래도 그린다. 비교는 자극이다. 포기는 아직.
- 03 Dec, 2025
마감 1주일 전의 기획 변경은 전쟁이다
마감 1주일 전의 기획 변경은 전쟁이다 월요일, 그날의 시작 월요일 오전 10시. 출근했다. 책상에 앉아서 타블렛 켰다. 지난주 금요일에 마무리한 캐릭터 컨셉 10개가 폴더에 정리돼 있었다. "이번 주는 디테일 작업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기획팀장이 지난주에 "이 방향으로 가요"라고 했었다. 메인 캐릭터 컨셉 3개, 서브 캐릭터 7개. 일주일 동안 밤 11시까지 남아서 그린 거다. 손목이 욱신거렸다. 파스 냄새가 났다. 어제 붙인 거다.커피 마시면서 아트스테이션 확인했다. 해외 아티스트들 작업물이 쭉 올라와 있었다. "저 퀄리티는 어떻게 나오는 거야." 한숨 나왔다. 오전 회의가 11시였다. 기획팀, 아트팀, 프로그래밍팀 합동. 마감이 2주 남았으니까 진행 상황 체크하는 자리. 회의실 들어갔다. 노트북 펴고 컨셉 파일 준비했다. 기획팀장이 먼저 말했다. "저, 그 캐릭터 컨셉 말이에요." 심장이 철렁했다. 이 말투는 안 좋은 거다. 5년 경력으로 안다. 회의실에서의 폭탄 선언 "윗분들이 어제 시안 보시고." 기획팀장이 말을 이었다. "방향을 좀 바꾸자고 하셨어요." 아트팀 팀장이 물었다. "어느 부분이요?" "컨셉 자체를요." 정적.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노트북 팬 소리만 들렸다. 나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우스를 꽉 쥐었다. "구체적으로 뭘 바꿔야 하는데요?" 내가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기획팀장이 자료를 띄웠다. 다른 게임 캐릭터들이었다. "이런 느낌으로 가자고 하세요." 보는 순간 알았다. 완전히 다른 컨셉이었다. 우리가 한 건 판타지 느낌. 그쪽은 SF 메카닉. "...이건 다시 그려야 하는데요." 아트팀 팀장이 말했다. "마감이 2주인데 가능해요?" "해야죠. 뭐." 기획팀장이 대답했다. 미안한 표정은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프로그래밍팀 팀장이 한숨 쉬었다. "우리도 애니메이션 다시 짜야 하네." 회의는 1시간 걸렸다. 결론은 하나. 다시 그린다. 그날 밤 11시의 슬랙 회의 끝나고 책상 돌아왔다. 점심은 못 먹었다. 입맛이 없었다. 폴더를 열었다. 일주일 동안 그린 컨셉들. 레이어가 200개 넘는 파일들. 러프 50장, 완성 10장. "이게 다 물거품이네." 혼잣말했다. 옆자리 선배가 들었는지 말했다. "처음은 아니잖아. 우리." 맞다.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후 내내 새 레퍼런스 찾았다. SF 메카닉 느낌. 핀터레스트, 아트스테이션 뒤졌다. 눈이 아팠다. 저녁 7시. 사람들 하나둘 퇴근했다. 나는 남았다. 팀장이랑 선배 둘도 남았다. "치킨 시킬까요?" 팀장이 물었다. "네." 대답했다. 배는 고팠다.밤 9시. 러프 스케치 10개 나왔다. 퀄리티는 애매했다. 당연하다. 하루 만에 나온 거니까. 밤 10시. 슬랙에 알림 떴다. 기획팀장이었다. "내일 오전에 러프 공유 부탁드려요." "네." 답장 보냈다. 짧게. 밤 11시. 슬랙에 또 알림. 이번엔 기획팀 막내. "아, 그리고요." 심장이 또 철렁했다. 밤 11시의 "그리고요"는 절대 좋은 소식이 아니다. "메인 캐릭터 성별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네?" "남자로 기획했는데 여자로 가자고 하세요." 손이 멈췄다. 타블렛 펜을 놓았다. "지금이요?" "죄송해요 ㅠㅠ 저도 방금 들었어요." 이모티콘까지 붙었다. 미안한 건 알겠다. 하지만. 키보드를 쳤다. 지우고 다시 쳤다. "내일 아침까지 수정할게요." 전송. 멘붕의 시작 책상에 엎드렸다. 5분. 아니, 10분쯤 그랬던 것 같다. 팀장이 물었다. "괜찮아?" "네." 일어났다. 괜찮지 않았다. 파일 새로 열었다. 러프 10개 중에 메인 캐릭터 3개. 남자로 그린 거. 이걸 여자로 바꾼다. 체형부터 다르다. 의상도 다르다. 실루엣 자체가 달라진다. "시발." 욕이 나왔다. 작게. 팀장이 못 들을 정도로. 마우스 잡았다. 레이어 지웠다. 새로 그렸다. 시간 확인했다. 밤 11시 30분. 여자친구한테 카톡 왔다. "언제 와?" "12시쯤?" 거짓말이었다. 어림없다. 2시는 돼야 나갈 것 같았다. "또 야근이야? ㅠㅠ" "응. 미안." "몸 챙겨." "ㅇㅇ" 답장 보내고 폰 뒤집었다. 새벽 2시의 결과물 새벽 1시. 러프가 나왔다. 여자 메인 캐릭터. SF 메카닉 느낌. 퀄리티는. 글쎄.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내일 아침 회의가 10시. 지금 퇴근해도 5시간밖에 못 잔다. 파일 저장했다. 슬랙에 올렸다. "러프 올립니다. 내일 아침에 확인 부탁드려요." 전송하고 컴퓨터 껐다. 팀장이 말했다. "고생했어. 들어가." "네. 팀장님도요." 사무실 나왔다. 건물 밖은 추웠다. 11월이었다. 택시 잡았다. 기사님이 물었다. "야근하셨어요?" "네." "요즘 다들 힘드시네요." "그러게요." 차 안에서 눈 감았다. 머릿속에 캐릭터 러프가 보였다. 선이 떨렸다. 피곤해서 손이 떨린 거다. "다 부질없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일주일 그린 게 하루 만에 날아갔다. 내일 그릴 것도 또 바뀔 수 있다. 집 도착했다. 2시 30분.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 봤다. 트위터 알림이 30개. 내 팬아트에 좋아요 달린 거. "이게 진짜 하고 싶은 그림인데." 중얼거렸다. 잠들었다. 꿈에서도 그림 그렸다. 악몽이었다. 다음날 아침 알람 소리에 깼다. 8시. 4시간 잤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손목도 아팠다. 어깨도 뻐근했다. 씻고 나왔다. 거울 봤다. 다크서클이 입술까지 내려왔다. "망했다." 출근 준비했다.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 입었다. 갈아입을 기력이 없었다. 편의점 들렀다. 박카스 두 개 샀다. 레드불도 하나. 9시 30분 출근. 30분 일찍 왔다. 러프 수정할 게 있을 것 같아서. 책상 앉았다. 슬랙 열었다. 기획팀장 메시지. 새벽 3시에 온 거. "러프 확인했습니다. 전체적으로 괜찮은데요." 숨을 쉬었다. 조금 안심했다. "한 가지만 수정 부탁드려요." 또 왔다. "메인 캐릭터 의상을 좀 더 화려하게 해주세요." "..." 키보드 쳤다. "알겠습니다." 10시 회의. 러프 보여줬다. 반응은 괜찮았다. "이 방향으로 가죠." 기획팀장이 말했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완성본 부탁드려요." 일주일. 디테일 작업에 일주일. 원래 일정이랑 똑같다. 하지만 원래 일정은 러프가 이미 있었다. 지금은 어제 밤에 그린 게 전부다. "네. 하겠습니다." 대답했다. 회의 끝나고 자리 왔다. 선배가 말했다. "살아남았네." "아직 모르죠." "뭐, 또 바뀔 수도 있지." 웃었다. 웃긴지 슬픈지 모르겠다. 마감까지 일주일 그날부터 일주일이 지옥이었다. 매일 밤 10시 퇴근. 주말도 나왔다. 토요일 8시간, 일요일 6시간. 손목에 파스 5장 붙였다. 효과는 없었다. 그냥 그렸다. 기획 변경은 두 번 더 있었다. 소소한 거. 의상 색상, 무기 디자인. "이건 애교지." 팀장이 말했다. 맞다. 성별 바뀌는 것보단 낫다. 여자친구랑은 일주일 동안 못 만났다. 카톡만 했다. 전화할 기력도 없었다. "이번 주만 지나면 괜찮아." 거짓말했다. 다음 프로젝트도 있다. 또 반복된다. 금요일 밤. 최종 파일 제출했다. 메인 캐릭터 3개, 서브 7개. 총 10개. 기획팀장이 확인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슬랙 메시지.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이모티콘 세 개. 박수, 파이팅, 맥주. 팀장이 말했다. "회식 가자." "네." 고깃집 갔다. 고기 구웠다. 소주 마셨다. 취했다. 많이. 집 들어와서 침대에 쓰러졌다. 옷도 안 벗었다. 핸드폰 봤다. 트위터. 내 팬아트가 리트윗 500개. "이게 진짜 하고 싶은 거야." 말했다. 아무도 안 들었다. 잠들었다. 월요일, 그리고 월요일 출근했다. 10시. 책상 앉았다. 슬랙 열었다. 기획팀장 메시지. "고생하셨습니다. 최종 승인 났어요." 안도했다. "다음 프로젝트 기획안 공유합니다." 파일 첨부. 열었다. "신규 캐릭터 20개." "마감 3주." "..." 커피 마셨다. 쓰디쓴 맛. 타블렛 켰다. 시작이다. 또.마감 전 기획 변경은 일상이다. 익숙해지지 않지만 계속된다. 그게 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