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내려갈 때 부모님이 묻는 질문들

명절에 내려갈 때 부모님이 묻는 질문들

명절에 내려갈 때 부모님이 묻는 질문들

KTX 안에서

대구 가는 KTX 표를 샀다. 명절 4일 전. 15만 원. 이번에도 어머니가 물을 것이다. “게임 그림 그리는 거 아직도 해?”

5년차다. 아직도라니.

가방에 아이패드 넣었다. 부모님께 뭘 하는지 보여줄까 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소용없다. 작년에도 보여드렸다. “그래, 그림 잘 그리네. 그래서 월급은?”

월급은 세전 417만 원. 실수령은 340만 원. 서울에서 혼자 살면 빠듯하다. 대구 기준으로는 괜찮은 돈이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다. 30년 근속. 어머니는 교사셨다. 28년. 두 분 다 정년퇴직. 안정이 답인 세대다.

집에 도착

“왔니?” “응.” “밥 먹었어?” “기차에서.”

짐 풀었다. 방은 그대로다. 고등학교 때 붙인 애니메이션 포스터. 미대 입시 때 그린 석고상 데생. 서울 올라간 지 7년인데 시간이 안 간다.

저녁이다. 아버지가 소주 따르신다. “회사는 잘 다니고 있고?” “네.” “게임 회사가… 요즘도 잘 되나?” “회사마다 다르죠.”

우리 회사는 작년에 게임 하나 출시했다. 흥했다. 보너스 300만 원 받았다. 그 얘기는 안 한다. 자랑 같아서.

“근데 그 게임 그림 그리는 거는, 계속 할 수 있는 거야?” 시작됐다.

‘안정적인’ 직업

어머니가 끼어드신다. “네 고등학교 동창 준호 있잖아. 걔 공무원 됐대.” “응.” “9급인데 지금 7급 됐대. 시험 또 봐서.”

준호는 미술 못 그렸다. 수학도 못했다. 영어는 더 못했다. 근데 공무원 됐다.

“준호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이제 안정적이래.” 안정적. 그 단어 나왔다.

“아들, 너도 공무원 시험 볼 생각은 없고?” “없어요.” “게임 회사가 언제 망할지 모르잖아.”

설명할까 말까 고민했다. 우리 회사는 직원 200명이다. 작년 매출 300억. 5년 내에 망할 확률은 낮다.

근데 설명해봤자다. 작년에도 설명했다. “그래도 공무원은 평생 직장이잖아.”

평생 직장. 우리 세대한테 그게 뭔 의미인데.

진짜 하는 일

아버지가 물으신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하는 건데?” “게임 캐릭터 디자인이요.” ”…캐릭터?”

TV를 켰다. 아이패드를 연결했다. 우리 회사 게임을 보여드렸다. “이 캐릭터들요. 제가 디자인한 거예요.”

화면에 여캐가 나온다. 검은 머리, 붉은 눈, 검은 옷. 뱀파이어 콘셉트다.

어머니가 화면을 본다. ”…치마가 좀 짧지 않니?” 시작됐다.

“게임이 원래 그래요.” “요즘 게임이 다 이렇게 야한 거야?” “야한 게 아니라 판타지예요.”

설명이 안 된다. 타겟 유저는 20~30대 남성이다. 과금 동력은 캐릭터 매력도다. ‘섹시함’은 디자인 요소 중 하나다.

이 말을 부모님께 할 수 있나.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그래도 네가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버니까, 그건 좋은 거지.” ”…” “근데 이게 계속 할 수 있는 일이냐는 거야.”

계속 할 수 있냐는 질문

진짜 답은 모르겠다.

5년차까지 왔다. 10년차까지 갈 수 있을까? 15년차는?

업계 선배 중에 15년차는 본 적 없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프리랜서가 됐거나. 다른 업종으로 갔거나. 아니면 팀장이 됐거나.

나는 팀장 체질이 아니다. 관리보다 그림 그리는 게 좋다. 그럼 15년 후엔?

AI 얘기는 안 꺼냈다. 요즘 AI가 그림을 그린다. 프롬프트 입력하면 5초 만에 나온다. 퀄리티는 아직 사람보다 낮다. 근데 1년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5년 후에는? 10년 후에는?

“계속 할 수 있어요.”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그냥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으면 되는 거야. 꾸준히 다니기만 하면.”

꾸준히 다니기만 하면.

게임 업계는 그렇게 안 된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팀이 해체된다. 게임이 망하면 대규모 구조조정이다. 작년에 옆 회사가 망했다. 직원 150명 중 100명 잘렸다.

아는 선배가 거기 있었다. 8년차였다. 지금 다른 회사 다닌다. 연봉은 2000만 원 깎였다.

“꾸준히만 다니면 되니?” ”…네.”

연애는 하냐는 질문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어머니가 먼저 돌리신다.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응.” “어떤 사람인데?”

여자친구는 비업계다. 회사원이다. 마케터. 연애한 지 1년 반.

“회사 다니는 사람이요.” “나이는?” “동갑.” “집은 어디?”

서울 마포구. 부모님이랑 산다. 그 얘기는 안 했다.

“서울이요.” “결혼 생각은 있고?”

1년 반 사귀었는데 결혼은 먼 얘기다. 나는 월세 40만 원 원룸에 산다. 여자친구는 부모님 집에 산다. 결혼하면 전세가 필요하다. 서울 전세는 최소 3억이다.

나한테 3억이 없다. 부모님께 손 벌릴 수도 없다. 여자친구 부모님께도 미안하다.

“아직 생각 안 해봤어요.” “서른인데 생각을 해야지.”

올해 서른이다. 동창들은 결혼 많이 했다. 준호도 작년에 했다. 청첩장 받았다. 축의금 5만 원 보냈다.

게임 원화가 평균 결혼 나이가 궁금하다. 찾아본 적 없다. 무서워서.

건강 챙기라는 말

저녁 먹고 설거지했다. 어머니가 내 손을 보신다.

“손목에 뭐 찼니?” “보호대요.” “왜?” “손목이 좀 아파서.”

거짓말 반. 손목이 많이 아프다.

하루 10시간 그린다. 타블렛에 펜을 쥐고. 손목은 계속 같은 각도다. 작년부터 아팠다.

정형외과 갔다. “손목터널증후군 초기예요. 쉬세요.” 쉴 수가 없다. 마감이 있다.

파스 붙이고 그린다. 진통제 먹고 그린다. 주말에도 그린다. 커미션 해야 한다.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몸 상하면서까지 할 일이야?”

할 일이다. 이게 내 일이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시작했다. 지금은 그림 그려야 살 수 있다.

“괜찮아요. 쉬면 나아요.” “병원은 갔어?” “다녀왔어요.”

MRI 찍으라고 했다. 30만 원이다. 아직 안 찍었다.

명절 마지막 날

서울 올라가는 날이다. 짐을 쌌다.

어머니가 반찬 주신다. 김치, 멸치볶음, 장조림. 무겁다. 고맙다.

현관에서 신발 신는다. 아버지가 나오신다.

“잘 다녀라.” “응.” “몸 조심하고.” “응.”

뭔가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다. 잠깐 멈추신다.

”…게임 그림 그리는 거. 네가 좋아서 하는 거면, 그냥 해.” ”…” “근데 너무 무리하지는 마라.”

목이 멘다. “응.”

KTX 탔다. 창밖을 본다.

부모님은 내 일을 모르신다. 게임 원화가가 뭔지. 하루에 뭘 하는지. 얼마나 힘든지.

설명해도 모르신다. 세대가 다르니까.

근데 걱정은 하신다.

그걸 알면 됐다.

서울 도착

집 도착했다. 원룸이다. 6평.

반찬 냉장고에 넣었다. 짐 풀었다.

여자친구한테 카톡 보냈다. “도착” “ㅇㅇ 오늘 만날래?” “피곤해 내일” “ㅇㅋ”

씻었다.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 봤다. 회사 단톡방에 메시지 100개. 내일부터 다시 출근이다.

생각한다.

부모님 질문에 제대로 답한 게 있나. “게임 회사 계속 다닐 수 있어?” 모르겠다.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어?” 모르겠다.

“그 일, 계속 할 거야?” …모르겠다.

근데 내일 출근은 한다. 그림은 그린다. 마감은 맞춘다.

지금은 그게 답이다.

불 껐다.


부모님이 이해 못 하시는 게 서운한 건 아니다. 나도 부모님 세대를 이해 못 한다. 그냥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 거다. 각자 최선을 다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