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Dec, 2025
손목이 아픈데 병원 갈 시간이 없다는 게 직업병
새벽 3시에 깨는 이유 또 깼다. 새벽 3시. 손목이 욱신거려서 눈이 떠졌다. 오른손을 주물러본다. 뭔가 뻐근하다. 아니, 뻐근한 정도가 아니다. 찌릿찌릿하다. 베개 밑에 파스가 있다. 요즘 매일 붙이고 잔다. 침대 옆 서랍에는 손목 보호대. 타블렛 칠 때 끼는 용인데, 자다가도 아프면 낀다. 시계를 본다. 3시 17분. 4시간 뒤면 출근이다. 다시 자야 하는데 손목 때문에 잠이 안 온다. 핸드폰을 왼손으로 든다. 오른손은 쓰기 싫어서. 트위터를 켠다. 같은 업계 사람들 트윗이 보인다. "손목 아픈 사람 손🙋" 리트윗 230개. 혼자가 아니구나. 근데 그게 위로가 되나.타블렛 든 손의 지문 굳은살을 세어본 적 있나. 내 오른손 검지와 중지 첫 마디. 펜을 쥐는 자리에 굳은살이 박혔다. 처음엔 물집이었다. 신입 때. 하루 12시간씩 그리다 보니 생겼다. 이제는 굳은살이 정체성이다. 손톱도 짧다. 타블렛 칠 때 걸리적거려서 매주 깎는다. 여자친구가 그랬다. "손이 너무 남자같아." 미안하다. 그림쟁이 손이 원래 이렇다. 손목은 더 심각하다. 손목터널증후군. 병원 갔을 때 들은 진단명이다. 정확히는 "수근관증후군 의심". 의심이래. 확정은 아니래. "정밀 검사 받으셔야 해요." "MRI 찍어보시죠." 비용을 물었다. 30만원. 검사만. 그날 병원 안 갔다. 회사 복귀했다.병원 예약은 3주 뒤 병원 갈 시간이 없다. 이게 말이 되나. 손목이 아픈데 병원을 못 간다. 직장인이면 다 아는 얘기다. 특히 게임 회사. 정형외과 진료 시간.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우리 회사 근무시간이랑 똑같다. 점심시간에 갈까. 1시간. 회사에서 병원까지 20분. 대기 30분. 진료 10분. 왔다갔다 하면 끝이다. 근데 점심시간에 자리 비우면 눈치 보인다. "어디 갔어요?" 물어본다. "병원이요" 하면 "아파요? 많이?" 이렇게 된다. 그럼 팀장이 걱정한다. "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다. 쉬면 일이 밀린다. 밀리면 다른 사람한테 피해다. 그래서 안 간다. 반차를 쓸까. 근데 이번 주는 마일스톤이다. 다음 주는 빌드다. 그다음 주는 CBT다. 언제 가지. 예약했다. 3주 뒤 토요일. 토요일 진료하는 정형외과를 찾았다. 집에서 1시간 거리. 그것도 오전만 한다. 3주를 더 버텨야 한다. 파스와 진통제의 일상 책상 서랍을 열면 파스가 보인다. 제일 위에 있다. 펜 옆에. 메모지 위에. 손 뻗으면 바로 닿는 곳. 아침에 붙이고 출근한다. 회사 화장실에서 한 번 더 붙인다. 퇴근 전에 또 붙인다. 파스 냄새가 난다. 옆자리 동료가 안다. "형 또 붙였어요?" 웃으면서 말한다. 근데 웃는 게 아니다. 걱정이다. 그 동료도 손목 아프다. 모델러인데 마우스를 하루 종일 쓴다. 우리 팀 절반이 손목 아프다. 진통제도 먹는다. 이부프로펜. 약국에서 산다.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거. 하루 3알까지 먹을 수 있대. 나는 하루 2알 먹는다. 점심 먹고 1알. 저녁 먹고 1알. 그러면 하루가 버텨진다. 근데 요즘은 3알 먹는 날이 많다. 새벽에 아파서 깨면 1알 더 먹는다. 의사가 알면 뭐라고 할까. "왜 병원 안 와요?" 할 것 같다. 시간이 없어서요.마감 앞에서 몸은 사치다 팀장이 말했다. "다들 몸 관리 잘하세요." 회의 끝나고 하는 말. 립서비스다. 진짜 쉬라는 게 아니다. 아프지 말라는 거다. 아프면 일정이 밀린다. 일정이 밀리면 팀 전체가 밀린다. 그러면 문제다. 그래서 아파도 출근한다. 감기 걸려도 출근한다. 열 나도 출근한다. 손목 아파도 출근한다. 쉬는 건 입원할 때다. 진짜 입원. 링거 맞을 정도. 그 정도 아니면 출근이다. 신입 때 선배가 그랬다. "게임 회사에서 몸은 사치야." 당시엔 농담인 줄 알았다. 이제 안다. 농담이 아니다. 마감 2주 전. 손목이 찢어질 것 같았다. 펜을 쥘 수가 없었다. 마우스도 아팠다. 그날 야근했다. 11시까지. 왼손으로 그렸다. 오른손은 못 쓰겠어서. 왼손은 서툴다. 시간이 2배 걸렸다. 그래도 해냈다. 캐릭터 3개 러프. 다음 날 리뷰 통과했다. 뿌듯했나. 아니다. 후회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나. 병원비보다 비싼 결근 병원비가 아깝지 않다. MRI 30만원. 비싸다. 근데 낼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일주일 쉬어야 해요." "물리치료 주 3회, 한 달." 이게 문제다. 일주일 쉬면 프로젝트가 멈춘다. 내가 맡은 캐릭터가 멈춘다. 그러면 다른 팀이 기다린다. 연차는 있다. 15일. 근데 쓸 수가 없다. 쓰면 눈치다. "왜 이 타이밍에?" 이렇게 된다. 사실 회사는 쉬라고 한다. "아프면 쉬세요." 겉으로는. 근데 분위기가 있다. 암묵적인. 아픈 사람은 약한 사람이다. 프로 정신이 부족하다. 열정이 없다. 이런 게 있다. 말 안 해도 느껴진다. 그래서 쉬지 않는다. 물리치료는 포기했다. 주 3회. 불가능하다. 평일 낮에 병원 갈 시간이 어딨나. 집에서 스트레칭한다. 유튜브 보면서. "손목 터널 증후군 자가 치료". 조회수 80만. 댓글을 본다. 다 나 같은 사람들이다. "저도 개발자인데 똑같아요" "디자이너 5년차 공감합니다" "병원 갈 시간이 없어요ㅠㅠ" 우리는 왜 이렇게 사나. 아프다는 말을 못하는 이유 어제 여자친구를 만났다. 손을 잡았다. 오른손. 아팠다. 표정이 굳었나보다. "왜? 아파?" 아니라고 했다. 괜찮다고. 거짓말이다. 아프다. 근데 말하면 걱정한다. 걱정하면 "병원 가" 이렇게 된다. 그럼 나는 "응" 하고 안 간다. 이런 대화 반복하기 싫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팀장한테 말하면 어떻게 될까. "손목 아파서 일 못 하겠습니다." "그래요? 병원 다녀오세요." 다녀오면 끝인가. 아니다. "괜찮아요? 일 할 수 있어요?" 이게 진짜 질문이다. 할 수 있냐 없냐. 할 수 없다고 하면. 일이 재분배된다. 다른 사람한테 간다. 그 사람은 야근한다. 나 때문에. 미안해진다. 그래서 "괜찮습니다" 한다. 괜찮지 않은데. 아픈 게 죄다. 이 업계에서는. 5년차의 몸 신입 때는 몰랐다. 하루 12시간 앉아서 그려도 괜찮았다. 주말에 개인 작업 8시간 해도 멀쩡했다. 손목이 조금 뻐근하면 스트레칭하면 됐다. 목 아프면 기지개 켜면 됐다. 지금은 다르다. 의자에서 일어날 때 허리가 아프다. 고개 돌릴 때 목이 뻐근하다. 눈이 침침하다. 29살. 벌써 이렇다. 동기들도 비슷하다. 한 명은 허리디스크로 수술했다. 6개월 전. 수술하고 3주 만에 복귀했다. "더 쉬라"고 했는데 안 쉬었다. 프로젝트 런칭 직전이었다. 한 명은 안구건조증 심해서 인공눈물 산다. 하루에 10번 넣는다. 모니터 보면 눈이 따갑대. 한 명은 불면증이다. 잠이 안 온다고. 새벽 4시에 자고 10시에 출근한다. 주말에 몰아서 잔다. 우리는 5년차다. 앞으로 20년 더 일해야 한다. 이 몸으로 가능할까. 프리랜서의 유혹 요즘 생각한다. 프리랜서 하면 어떨까. 시간 자유롭다. 손목 아프면 쉴 수 있다. 병원 갈 수 있다. 근데 수입이 불안정하다. 일감이 있을 때만 번다. 4대보험 없다. 퇴직금 없다. 회사는 안정적이다. 매달 월급 들어온다. 연차 있다. 건강검진 지원한다. 근데 내 몸은 불안정하다. 뭐가 우선일까. 트위터에서 프리랜서 작가들 본다. 커미션 받는다. 월 500만원 번다는 사람도 있다. 부럽다. 근데 그들도 아플 것이다. 마감은 있으니까. 손목도 아플 것이다. 타블렛 쓰니까. 차이는 병원 갈 시간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크다. AI가 가져올 미래 최근 AI 그림 본다. Midjourney. Stable Diffusion. 몇 초 만에 완성도 높은 그림 나온다. 무섭다. 우리 일이 없어질까. 그것보다 무서운 건. 손목 아파서 못 그리게 됐을 때. AI가 나를 대체할 것이다. 신입은 AI 쓴다. "이거 참고해서 그려주세요" 하면 러프 만들어준다. 편하다. 나도 쓴다. 레퍼런스 만들 때. 시간 절약된다. 근데 동시에 생각한다. 내 가치는 뭔가. 손목 아픈 채로 그리는 나. AI 버튼만 누르면 되는 신입. 누가 더 효율적인가. 무섭다. 내일도 출근한다 새벽 4시. 아직도 안 잤다. 손목 때문에. 파스 다시 붙였다. 진통제 먹었다. 손목 보호대 찼다. 이제 좀 나은 것 같다. 아니, 익숙해진 것 같다. 6시간 뒤 출근이다. 타블렛 켤 것이다. 펜 들 것이다. 손목 아픈 채로 그릴 것이다. 마감까지 2주. 버틸 수 있나. 버텨야 한다. 3주 뒤 토요일. 병원 예약 있다. 그때까지만.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 다음은. 또 버티겠지.손목이 아프다. 근데 그릴 수 있다. 그러면 출근한다. 이게 게임쟁이 삶이다.
- 04 Dec, 2025
AI 그림 뉴스를 본 날의 불안감
뉴스피드 출근길 지하철에서 봤다. 뉴스 헤드라인. "AI, 이제 게임 캐릭터도 그린다... 3분이면 완성" 스크롤을 멈췄다. 기사를 열었다. 어떤 스타트업에서 만든 AI래. 텍스트만 입력하면 캐릭터 컨셉아트를 뽑아준다고. 클릭 몇 번이면 의상 바리에이션까지. 베타 테스터 후기가 달려있었다. "이제 아티스트 안 구해도 되겠네요 ㅋㅋ" 회사 도착했다. 자리에 앉았다. 포토샵을 켰다. 어제 그리던 캐릭터가 보였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주름 하나하나. 8시간 걸린 작업이다.마우스를 잡았다. 손이 무겁다. 회의실에서 오전 10시. 팀 미팅. 팀장이 말했다. "요즘 AI 그림 툴들 봤어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말했다. "미드저니 결과물 보니까 퀄리티 괜찮던데요." 팀장이 웃었다. "우리 일자리는 안전하겠죠. 캐릭터는 스토리가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팀장 표정이. 확신에 찬 게 아니었다. 회의가 끝났다. 자리로 돌아왔다. 기획팀에서 메신저가 왔다. "컨셉 5개 더 부탁드려요. 내일까지요." 5개. 하루에. 예전 같으면 불가능하다고 했다. 오늘은 "네"라고 답했다. AI는 3분이면 된다는데. 나는 하루에 5개도 못 그리면 안 되는 거 아닐까.점심 먹으면서 아트스테이션을 봤다. 검색창에 "AI art" 쳤다. 결과물들이 쏟아졌다. 퀄리티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라이팅이 자연스럽다. 구도가 탄탄하다. 컬러 하모니도 괜찮다. 댓글을 봤다. "이거 진짜 AI가 그렸어요?" "프롬프트 공유 가능하신가요?" "아티스트 시대 끝났네 ㅋㅋ" 밥맛이 없어졌다. 5년의 무게 오후 3시. 작업 중. 신입이 물었다. "선배님, 손 떨림 보정 어떻게 써요?" 보정 설정을 알려줬다. 브러시 세팅도 공유했다. 레이어 구조 설명하고. 컬러 피커 쓰는 법도. 5년이면 쌓이는 게 이런 거다. 단축키. 워크플로우. 효율적인 러프 방법. 빠른 수정 노하우. 근데 AI한테는 필요 없는 것들이다. AI는 손 떨림이 없다. 레이어를 안 쓴다. 러프 과정이 없다. 수정은 프롬프트 한 줄이면 된다. 저녁 7시. 퇴근했다. 집 가는 길에 편의점 들렀다. 맥주 두 캔 샀다. 원룸 문 열고 들어왔다. 불 켰다. 타블렛이 보인다. 책상 위에 그림 자료집들. 벽에 붙인 캐릭터 시트들. 5년 동안 모은 것들이다. 의미가 있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맥주를 땄다. 한 모금 마셨다. 유튜브를 켰다. 추천 영상에 또 떴다. "AI 그림으로 월 500만원 버는 법" "미드저니로 일러스트 10분 만에 그리기" "아티스트는 이제 끝인가?" 영상을 틀었다. 꺼버렸다. 다시 틀었다. 끝까지 봤다. 댓글창을 내렸다. "그림쟁이들 이제 뭐 먹고 살아요 ㅋㅋ" "AI한테 못 지는 게 뭐 있나요?" "창의성은 못 따라한다던데... 그것도 시간문제 아님?" "전업러들 각오하세요" 댓글을 읽다가. 마지막에. 한 댓글이 보였다. "저도 원화가인데 요즘 매일 불안해요. 같은 마음이신 분들 많으시네요." 좋아요가 327개였다. 밤 2시 샤워하고 나왔다. 침대에 누웠다. 잠이 안 온다. 핸드폰을 들었다. 트위터를 켰다. 타임라인에 그림쟁이들 글이 보인다. "AI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뭐 해야 할까요" "요즘 그림 그리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져요" "5년 배운 건데 3분짜리한테 질 수도 있다니" 리트윗했다. 좋아요 눌렀다. 같은 고민하는 사람이 나만 아니라는 게. 위로가 되면서도. 더 무섭다. 업계 전체가 흔들리는 거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책상에 앉았다. 타블렛을 켰다. 클립스튜디오를 열었다. 새 캔버스. 3000x3000. 뭘 그릴까 생각했다. 아무 생각이 안 났다. 프롬프트로 설명 못 할 그림을 그려야 하나. AI가 못 그리는 걸 그려야 하나. 근데 그게 뭔데. 손이 안 움직인다. 10분 있었다. 그냥 빈 캔버스만 보고. 창을 닫았다. 유튜브 켰다. 아무 영상이나 틀었다. 새벽 2시 40분. 침대로 돌아왔다. 천장을 봤다. 5년이다. 5년 동안 매일 그렸다. 러프 몇천 장. 완성작 몇백 개. 손목에 굳은살. 허리 디스크 초기. 밤새 작업하던 날들. 리젝 당하고 다시 그리던 시간들. 그게 3분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거다.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단톡방을 봤다. 대학 동기들 방. 마지막 메시지가 어제였다. 누가 올린 AI 그림 뉴스. 아무도 답을 안 달았다. 다들 생각은 똑같을 거다. 말 안 해도 안다. 불안하다는 거. 무섭다는 거. 내일이 안 보인다는 거. 메시지 입력창을 눌렀다. 뭐라고 칠까 했다. 지웠다. 핸드폰을 내려놨다. 눈을 감았다. 내일 출근하면. 또 그림 그린다. 컨셉 5개. 하루 만에. AI보다 빠를 순 없다. 근데 AI보다 나은 게 뭔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려야 하니까 그린다. 5년 동안 해온 거니까. 다른 건 할 줄 모르니까. 그게 5년차 게임 원화가의 2024년이다. 새벽 3시. 겨우 잠들었다.내일도 출근한다. 그림 그린다. 그게 답인지는 모르겠다.
- 03 Dec, 2025
실루엣이 안 살아요: 채택 안 되는 컨셉 10개의 공통점
실루엣이 안 살아요: 채택 안 되는 컨셉 10개의 공통점 또 떨어졌다 기획팀에서 피드백 왔다. "실루엣이 약해요." 10개 그렸다. 디테일 살렸다. 질감도 넣었다. 컬러도 3버전씩. 채택은 1개도 없다. "디자 님, 실루엣부터 잡고 오세요." 5년 차에 듣는 말이다. 화가 난다기보다 허탈하다. 어제 밤 11시까지 작업했다. 벨트 버클 하나하나 다 그렸다. 갑옷 스크래치도 넣었다. 근데 실루엣이 약하다니. 커피 마시고 다시 파일 열었다. 검은색으로 채웠다. 아, 이거. 다 똑같이 생겼다.2년 차 때 모르던 것 신입 때는 몰랐다. 디테일이 실력이라고 생각했다. 선배가 5분 만에 그린 러프가 채택됐다. 내가 3일 그린 건 떨어졌다. 이해 안 됐다. 내 게 더 디테일했는데. "실루엣부터 봐." 선배가 그때 했던 말이다. 무슨 말인지 몰랐다. 지금은 안다. 게임 캐릭터는 3cm로 보인다. 모바일은 더 작다. 디테일은 안 보인다. 실루엣만 보인다. 기획서에 '원거리 딜러'라고 써 있으면. 실루엣만 봐도 원거리여야 한다. 활 들고 있어야 한다. 몸은 날씬해야 한다. 근데 내가 뭘 그렸나. 갑옷 입은 궁수. 실루엣은 전사다. "이거 탱커 아닌가요?" 기획팀 말이다. 할 말 없다. 떨어진 10개의 공통점 지난 3개월간 떨어진 컨셉들 모았다. 정확히 37개다. 채택률 27%. 처참하다. 공통점 찾았다. 1. 팔다리가 몸통에 붙어 있다 검은색으로 채우면 한 덩어리다. 팔이 어딘지 모른다. 다리도 마찬가지. 액션 포즈인데 정지해 보인다. 유니티에서 돌려보면 더 심하다. 움직이는데 뭐가 움직이는지 모른다. 2. 머리 장식이 과하다 뿔 달고, 깃털 달고, 왕관 쓰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실루엣 보면 머리가 3배다. 몸은 안 보인다. "이 캐릭터 컨셉이 뭐예요?" 물어보면 대답 못 한다. 머리 장식이 컨셉을 먹어버렸다. 3. 무기가 작다 이건 진짜 많이 했다. 현실적으로 그리려고. 검은 팔 길이만큼. 총은 실제 크기로. 게임에서는 안 보인다. 무기 든 건지 맨손인지 구별이 안 된다. 오버워치 봐라. 해머는 몸만 하다. 게임은 과장이다.4. 대칭이다 왼쪽 오른쪽 똑같다. 갑옷도 대칭. 망토도 가운데. 칼집도 정중앙. 안정적이다. 근데 재미없다. 실루엣이 밋밋하다. 채택되는 디자인은 비대칭이다. 한쪽 어깨만 갑옷. 한쪽 팔만 문신. 한쪽으로 흐르는 천. 5. 포즈가 정면이다 T포즈로 그렸다. 팔 벌리고 다리 모으고. 깔끔하다. 보기 좋다. 근데 게임에서는 안 쓴다. 게임은 측면이다. 뛰고 싸우고 구른다. 측면 실루엣 테스트 안 한 게 후회된다. 6. 얼굴에 집착했다 눈 디테일 2시간 그렸다. 속눈썹 하나하나. 입술 하이라이트. 게임에서 얼굴은 1cm다. 안 보인다. 근데 작업 시간의 30%를 얼굴에 썼다. 실루엣 작업은 10%도 안 했다. 7. 천이 너무 많다 망토, 스카프, 치마, 소매. 휘날리는 천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실루엣 보면 천이 몸을 가린다. 체형이 안 보인다. 근육도 갑옷도 다 가려졌다. "이 캐릭터 전사예요, 법사예요?" 기획팀이 물었다. 천 때문에 모른다. 8. 컬러로 구별하려 했다 "실루엣 비슷해도 컬러가 다르면 되죠." 2년 차 때 내가 한 말이다. 틀렸다. 색약 모드 있다. 흑백으로 봐도 구별돼야 한다. 실루엣이 전부다. 9. 유행 따라갔다 요즘 뭐가 유행인가. 트위터 보고 아트스테이션 보고. 비슷하게 그렸다. 근데 우리 게임 컨셉이랑 안 맞는다. 실루엣도 기존 캐릭터랑 겹친다. 유행은 레퍼런스지 답이 아니다. 10. 테스트 안 했다 제일 큰 문제다. 그냥 제출했다. 실루엣 확인 안 하고. 검은색 채우기 5초면 된다. 근데 안 했다. 귀찮아서. 디테일 작업에 취해서. 결과는 리젝이다.지금 하는 방법 이제는 실루엣부터 그린다. 순서가 바뀌었다. 1단계: 러프 실루엣 10개 검은 덩어리만 그린다. 10분에 하나씩. 디테일 없다. 그냥 형태만. 포즈도 다르게. 정면, 측면, 3/4. 액션 포즈도 섞는다. 10개 나란히 놓고 본다. 겹치는 거 지운다. 남은 건 3개. 2단계: 팀 리뷰 실루엣만 보여준다. "이거 뭐 들고 있나요?" 물어본다. 대답 나오면 통과다. "모르겠는데요" 나오면 수정이다. 디테일 들어가기 전에 방향 잡는다. 시간 아낀다. 3단계: 3가지 포즈 테스트 채택된 실루엣을 3가지 포즈로 그린다. 서 있기, 공격, 달리기. 전부 실루엣 살아야 한다. 하나라도 뭉개지면 다시 수정. 4단계: 디테일 작업 여기서부터 디테일 넣는다. 질감, 컬러, 장식. 근데 실루엣 해치면 안 된다. 디테일은 실루엣 안에서만. 작업 중간중간 검은색 채워본다. 실루엣 체크다. 5단계: 최종 테스트 완성본을 축소한다. 3cm 크기로. 모바일 화면에 띄워본다. 구별되면 통과. 안 되면 실루엣 다시. 디테일은 확대해서 볼 때만 보인다. 근데 게임은 축소가 기본이다. 기획팀이 보는 것 기획팀은 디테일 안 본다. 처음에는. "이 캐릭터 누구예요?" 3초 안에 대답 나와야 한다. 실루엣만 봐도. "원거리 딜러요." "어떻게 알았어요?" "활 들고 있고 몸이 날씬해서요." 이게 답이다. "갑옷 디테일이 어쩌고..." "벨트 버클이 이렇고..." 이런 말 안 나와야 한다. 실루엣이 먼저다. 기획팀 입장 이해한다. 캐릭터 20개 넘는다. 실루엣 비슷하면 플레이어가 헷갈린다. "근데 디자 님, 이거랑 이거 구별 안 되는데요." 두 캐릭터 보여준다. 하나는 내 거. 하나는 3개월 전에 나온 거. 실루엣 똑같다. 디테일만 다르다. 리젝 당연하다. 아직도 어려운 것 5년 차인데 아직도 실수한다. 디테일 작업하다 보면 실루엣 까먹는다. 2시간 그리면 빠진다. 디테일 늪에. "여기 주름 하나 더." "이 금속 질감 더 살려야지." 그러다 실루엣 망가진다. 알람 맞춘다. 30분마다. 울리면 실루엣 체크한다. 검은색 채우기. 5초 걸린다. 근데 귀찮다. 알람 끈다. 또 잊어먹는다. 마감 전날에 깨닫는다. "아, 실루엣." 그때는 늦었다. 처음부터 다시 그린다. 밤 새운다. 언제쯤 자동으로 될까. 실루엣이 손에 배는 날이. 선배의 5분 러프 요즘 이해된다. 선배가 5분 만에 그린 그 러프. 디테일 없었다. 선 몇 개. 색칠도 대충. 근데 실루엣은 완벽했다. 포즈도 명확했다. 캐릭터 성격도 보였다. "이거 괜찮은데요. 이걸로 진행하시죠." 기획팀이 바로 OK 했다. 나는 그때 화났다. 내가 3일 그린 건 왜 떨어졌나. 지금은 안다. 선배는 실루엣부터 그렸다. 나는 디테일부터 그렸다. 순서가 달랐다. 게임 원화는 일러스트가 아니다. 예쁜 그림 그리는 게 아니다. 3cm로 축소돼도 살아있는 디자인. 그게 게임 컨셉이다. 채택률이 오른 이유 요즘 채택률 60% 넘는다. 3개월 전보다 2배다. 디테일 실력은 그대로다. 손 더 빨라진 것도 아니다. 바뀐 건 하나. 실루엣부터 그린다. 러프 단계에서 10개 그린다. 디테일 없이. 실루엣만 보고 5개 지운다. 남은 5개 기획팀 보여준다. "이 중에 뭐가 좋아요?" 2개 고른다. 그것만 디테일 작업한다. 시간도 아낀다. 전에는 10개 다 디테일 넣었다. 일주일 걸렸다. 채택은 1개. 지금은 2개만 디테일. 2일 걸린다. 채택은 1~2개. 효율이 3배다. AI한테 안 지려면 요즘 AI 그림 무섭다. 디테일은 사람보다 낫다. 근데 실루엣은 약하다. 프롬프트로 실루엣 조절 어렵다. 포즈도 애매하다. 게임 컨셉 아트는 실루엣이다. 여기서 사람이 이긴다. AI는 예쁜 그림 그린다. 근데 게임 캐릭터는 못 그린다. 아직은. 실루엣 훈련 더 해야겠다. 여기가 살길이다. 손 빠른 건 AI가 이긴다. 디테일도 진다. 근데 디자인은 아직 사람이다. 실루엣 감각. 캐릭터 구별. 포즈 명확성. 이게 원화가의 영역이다. 당분간은. 내일 할 것 신규 캐릭터 5개 의뢰 들어왔다. 마감은 다음 주. 예전 같으면 바로 디테일 들어갔다. 지금은 다르다. 내일 오전: 실루엣 러프 25개 (5개×5버전) 내일 오후: 팀 리뷰, 5개 선정 모레: 선정된 5개 포즈 테스트 다음 주 월화수: 디테일 작업 목요일: 최종 제출 실루엣 작업 비중이 30%다. 전에는 10%였다. 시간 배분이 바뀌었다. 결과도 바뀔 거다. 떨어지는 컨셉 줄이고 싶다. 밤새우는 날 줄이고 싶다. 실루엣이 답이다. 5년 차에 깨달았다. 늦었지만 다행이다.태블릿 끄고 손목 돌린다. 내일은 실루엣부터. 디테일은 나중에. 이게 순서다.
- 03 Dec, 2025
여기 터치감이 좋네: PSD 분석이 취미인 원화가의 밤
밤 11시, 파일 하나 열었다 퇴근하고 샤워했다. 밥 먹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손이 먼저 움직인다. 타블렛 켰다. 오늘도 트위터에서 저장한 그림이 있다. 중국 작가, 팔로워 50만. 캐릭터 일러스트 하나 올렸는데 좋아요 8만. 구도도 좋고 색감도 좋고 터치도 좋다. "PSD 공유합니다" 댓글 봤다. 패트리온 링크. 5달러. 결제했다.파일 용량 2.3GB. 다운로드 5분 걸렸다. 포토샵 켰다. 레이어 펼쳤다. 레이어 187개. "미쳤네." 이게 시작이다. 밤 12시까지 본다는 게 새벽 3시 된다. 매번 그렇다. 레이어 이름부터 본다 PSD 뜯어보는 건 습관이 됐다. 5년 전부터. 신입 때 선배가 알려줬다. "그림 잘 그리고 싶으면 잘 그린 사람 파일 봐라." 처음엔 뭐가 뭔지 몰랐다. 레이어가 100개 넘으면 어지러웠다. 이름도 "레이어 1", "레이어 2" 이런 거. 정리 안 된 파일은 쓰레기통. 그런데 정리된 파일은 다르다. 폴더 구조가 보인다. "러프 - 선화 - 채색 - 효과". 각 폴더 안에 또 세분화. "피부 베이스", "피부 그림자 1", "피부 그림자 2", "피부 하이라이트". 이름만 봐도 작업 순서가 보인다.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끝났는지. 어떤 레이어를 몇 번 수정했는지. 오늘 받은 파일도 그랬다. 폴더명이 영어와 중국어 섞여 있다. "base_color", "shadow_阴影", "light_01". 레이어 하나하나 껐다 켰다 반복한다. 이 레이어가 어떤 역할인지 확인한다. "아, 여기서 색 보정했네." "이 레이어는 곱하기 모드구나." "하이라이트를 따로 레이어로 뺐네."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한 시간 지났다. 브러시 설정을 따라 그린다 레이어 구조 파악했으면 다음은 브러시다. PSD 파일에는 브러시 정보가 남는다. 어떤 브러시로 그렸는지, 불투명도는 몇인지, 유량은 몇인지. 전부 다 보인다. 처음 알았을 때 충격이었다. "진짜 다 보이네?" 요즘은 브러시 따라 그리기가 취미다. 마음에 드는 레이어 선택한다. 스포이드로 색 찍는다. 브러시 설정 확인한다. 크기 200px, 불투명도 80%, 유량 100%, 브러시는 기본 하드 브러시에 텍스처 추가. 새 파일 연다. 똑같이 설정한다. 그린다. "어? 이거 이 느낌 맞는데?" 똑같진 않다. 당연하다. 손맛이 다르니까. 그런데 비슷해진다. 터치의 강약, 선의 굵기, 색이 번지는 느낌. 따라 그리면 느껴진다.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 세 번 그린다. 다섯 번 그린다. 손에 익힌다. 어떤 파일은 10번도 넘게 본다. 같은 파일을 일주일 내내 본 적도 있다. 출근 전 30분, 퇴근 후 2시간. 계속 뜯어보고 따라 그렸다. 회사 동료가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 대답 못 했다. 그냥 재밌다. 중독이다.5번 이상 확인하는 이유 같은 파일을 여러 번 본다. 5번은 기본이다. 10번도 넘게 본다. 첫 번째: 전체 구조 파악. 큰 그림 본다. 두 번째: 채색 방식 확인. 어떤 순서로 색 쌓았는지. 세 번째: 디테일 체크. 작은 터치 하나하나. 네 번째: 효과 레이어 분석. 보정, 오버레이, 곱하기. 다섯 번째: 실수한 부분 찾기. 프로도 실수한다.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인다. 처음엔 몰랐던 게 두 번째에 보인다. 세 번째엔 "아, 이래서 이렇게 한 거구나" 깨닫는다. 어떤 파일은 작가의 습관이 보인다. 선화 레이어를 여러 개 나눈다. 얼굴, 머리카락, 옷, 소품. 따로 그려서 나중에 수정하기 쉽게. 그림자를 3단계로 나눈다. 어두운 그림자, 중간 그림자, 엷은 그림자. 입체감이 다르다. 하이라이트를 마지막에 넣는다. 한 레이어에 몰아서. 반짝임의 위치를 계산한 느낌. "이 사람은 이렇게 그리는구나."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보인다. 습관이 쌓여서 스타일이 된다. 나도 그렇게 만들고 싶다. 회사에서는 못 한다. 회사 작업은 기획 스펙 맞춰야 한다. 아트 디렉터 피드백 받아야 한다. 내 스타일 넣을 틈이 없다. 그래서 밤에 한다. 퇴근하고 PSD 뜯어본다. 내 스타일 만드는 시간이다. 따라 그리면 보이는 것들 PSD 분석만 하면 안 된다. 직접 그려야 한다. 새 파일 만든다. 레퍼런스 파일 옆에 띄운다. 똑같이 그린다. 러프부터 시작한다. 구도 잡는다. 선 긋는다. 지운다. 다시 긋는다. 선화 넘어간다. 깔끔하게 정리한다. 레이어 나눈다. 얼굴, 머리, 옷. 채색 들어간다. 베이스 색 깐다. 그림자 넣는다. 하이라이트 넣는다. 이 과정에서 깨닫는다. "아, 이 각도는 어렵네." "이 색 조합은 이래서 좋구나." "이 터치는 이렇게 해야 자연스럽네." 보기만 할 때는 몰랐다. 그려보니까 안다. 왜 이렇게 했는지. 왜 이게 더 나은지. 실패도 많다. 따라 그렸는데 이상하다. 뭔가 다르다. 레퍼런스는 멋진데 내 그림은 어색하다. 다시 PSD 본다. 뭘 놓쳤는지 찾는다. "아, 이 레이어를 빼먹었네." "이 색이 좀 더 탁했구나." "선 굵기가 달랐네." 고친다. 다시 그린다. 조금 나아진다. 이걸 반복한다. 5번, 10번. 어느 순간 손에 익는다. 회사 작업할 때 자연스럽게 나온다. "어? 내가 이런 터치도 되네?" 놀란다. PSD 분석하고 따라 그린 게 몸에 밴 거다. 팀장이 말했다. "요즘 터치가 좋아졌어." 기분 좋았다. 밤새 PSD 뜯어본 보람이다. 중독된 순간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어느 순간 중독돼 있었다. 퇴근하면 자동으로 컴퓨터 켠다. 트위터 확인한다. 오늘 올라온 그림 본다. 마음에 드는 거 저장한다. 패트리온 확인한다. 구독 중인 작가 12명. 한 달에 60달러 쓴다. 8만원쯤. 비싸다. 그런데 끊을 생각 없다. 새 PSD 올라오면 알림 온다. 바로 다운로드한다. 바로 열어본다. 밤 11시여도 일단 본다. "10분만 볼까." 새벽 2시다. "이것만 보고 자야지." 새벽 4시다. 다음 날 출근한다. 피곤하다. 커피 세 잔 마신다. 오전은 좀비처럼 보낸다. 그래도 후회 안 한다. 어젯밤에 본 PSD가 머릿속에 남아 있다. 오늘 작업할 때 써먹는다. 팀원이 물었다. "이 터치 어떻게 한 거예요?" "어제 본 파일에서 봤어. 이렇게 하더라." 공유한다. 같이 본다. 팀 전체가 늘는다. 회사 일만 하면 성장이 더디다. 정해진 스타일만 그린다. 새로운 시도는 거부당한다. "이건 우리 게임 무드랑 안 맞아." 그래서 밤에 공부한다. 내 시간에 투자한다. PSD 분석이 자기계발이다. 친구가 말했다. "너 일 끝나고도 일하네." 아니다. 이건 일이 아니다. 놀이다. 게임하듯이 PSD 뜯어본다. 공략집 보듯이 레이어 분석한다. 재밌다. 중독됐다. 끊고 싶지 않다. 손맛을 훔친다는 것 PSD 분석의 본질은 '손맛 훔치기'다. 그림에는 손맛이 있다. 같은 브러시, 같은 색이어도 그린 사람마다 다르다. 선의 흐름, 터치의 강약, 색이 쌓이는 느낌. 이게 '그림체'다. '스타일'이다. 프로들은 자기 손맛이 있다. 몇 년, 몇십 년 쌓인 습관이다. 이걸 PSD로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어떤 작가는 선을 한 번에 긋는다. 레이어 기록 보면 딱 한 획. 깔끔하다. 자신감이 느껴진다. 어떤 작가는 선을 여러 번 겹친다. 얇은 선을 3~4번 그어서 만든다. 조심스럽다. 섬세하다. 어떤 작가는 색을 막 쌓는다. 레이어 100개 넘는다. 빨강 위에 파랑, 파랑 위에 노랑. 복잡하다. 그런데 결과물은 깔끔하다. 어떤 작가는 색을 최소한으로 쓴다. 레이어 20개. 베이스, 그림자, 하이라이트. 끝. 간결하다. 효율적이다. 정답은 없다. 다 다르다. 그게 좋다. 나는 여러 스타일을 흡수한다. 이 작가의 선화 방식, 저 작가의 채색 방식, 또 다른 작가의 마무리 방식. 섞는다. 조합한다. 그러다 보면 내 손맛이 만들어진다. 남의 걸 배우다가 어느 순간 내 것이 된다. 회사 후배가 물었다. "선배님 그림체는 어떻게 만드셨어요?" "PSD 100개쯤 뜯어봤어." 진심이다. 훔친 손맛들이 모여서 내 손맛이 됐다. 새벽 3시의 깨달음 새벽 3시. 아직도 PSD 보고 있다. 오늘 분석한 파일은 일본 작가. 소녀 캐릭터 일러스트. 파스텔 톤. 부드러운 느낌. 레이어 150개. 4시간째 보는 중이다. 피부 채색 방식이 독특하다. 베이스 색을 깔고 그 위에 에어브러시로 그라데이션. 그 위에 하드 브러시로 텍스처. 그 위에 오버레이 레이어로 색 보정. 4단계다. 복잡하다. 그런데 이래서 피부가 이렇게 투명하게 보이는구나. 따라 그려본다. 새 파일 만든다. 똑같이 한다. "오." 된다. 비슷하다. 완전히 같진 않아도 느낌은 온다. 저장한다. 내일 회사 작업에 써먹어야지. 시계 본다. 새벽 3시 반. "내일 10시 출근인데." 5시간 반 남았다. 자야 한다. 알면서도 못 끈다. "이것만 보고." 항상 그렇다. '이것만'은 없다. 하나 보면 연결된 게 보인다. 이 작가 다른 작품도 보고 싶다. 비슷한 스타일 작가도 찾아본다. 패트리온 뒤진다. 픽시브 검색한다. 아트스테이션 넘긴다. 새벽 4시. "진짜 자야 하는데." 레이어 하나 더 분석한다. 브러시 하나 더 테스트한다. 색 조합 하나 더 메모한다. 새벽 5시. 포기하고 눈 감는다. 침대로 간다. 누웠다. 머릿속에 레이어가 보인다. "러프 - 선화 - 채색 - 효과" 폴더 구조가 떠오른다. 잠든다. 꿈에서도 그림 그린다. 이게 취미다 사람들은 퇴근하고 넷플릭스 본다. 유튜브 본다. 게임한다. 술 마신다. 나는 PSD 뜯어본다. 여자친구가 물었다. "그거 재밌어?" "응. 재밌어." "뭐가?" 설명 못 한다. 그냥 재밌다. 보물찾기 같다. 좋은 PSD 찾으면 기분 좋다. 잘 정리된 레이어 구조 보면 감탄한다. 신박한 기법 발견하면 흥분한다. "이렇게 하면 이런 효과가 나오네!" 혼자 소리 지른다. 밤 12시인데 시끄럽다. 옆집에서 벽 두드린다. 조용히 한다. 그래도 들뜬 건 어쩔 수 없다. 친구들은 이해 못 한다. "그림 그리는 것도 일인데 퇴근하고 또 그려?" 다르다. 회사에서 그리는 건 일이다. 스펙 맞춰야 한다. 수정 요청 들어온다. 스트레스다. 집에서 그리는 건 놀이다. 내가 하고 싶은 거 한다. 배우고 싶은 거 배운다. 자유다. PSD 분석은 놀이터다. 마음껏 뛰어논다. 회사에서 써먹는다 밤에 배운 건 낮에 써먹는다. 오늘 회의. 신규 캐릭터 컨셉 작업. 아트 디렉터가 말한다. "좀 더 몽환적인 느낌으로. 근데 너무 흐리지 않게." 애매하다. 이런 피드백 항상 온다. 예전 같으면 막막했다. 지금은 안다. 어젯밤에 본 PSD. 일본 작가 파일. 파스텔 톤에 선명한 선화. 에어브러시로 분위기 만들고 하드 브러시로 디테일. "이렇게 해볼게요." 그린다. 베이스는 부드럽게. 디테일은 선명하게. 레이어 나눠서 조절 쉽게. 2시간 만에 완성. 보여준다. "오, 이거네. 이 느낌." 통과. 옆자리 후배가 물어본다. "어떻게 한 거예요?" "PSD 분석했어. 이 작가 파일 봐." 공유한다. 같이 본다. 후배도 배운다. 팀 전체 실력이 오른다. 내가 밤에 공부한 게 회사에 도움 된다. 뿌듯하다. 팀장이 말한다. "요즘 우리 팀 퀄리티 좋아졌어." 당연하다. 나 혼자 아니다. 다들 밤에 공부한다. PSD 돌려본다. 레퍼런스 공유한다. 회사는 학교다. 배우는 곳이다. 월급 받으면서 배운다. 좋은 시스템이다. 그런데 회사에서만 배우면 부족하다. 회사 스타일에 갇힌다. 시야가 좁아진다. 그래서 밤에 PSD 뜯어본다. 세계 각국 작가들 본다. 일본, 중국, 한국, 미국, 유럽. 다양한 스타일 흡수한다. 시야가 넓어진다. 선택지가 늘어난다. 더 좋은 그림 그린다. 질문 받는다 트위터에 가끔 그림 올린다. 팔로워 8000명. 팬아트 위주. 댓글 온다. "터치가 좋아요", "어떻게 그리세요?" DM 온다. "브러시 설정 알려주실 수 있나요?" 답한다. "PSD 분석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하는 건가요?" 설명한다. 좋은 작가 패트리온 구독하고, PSD 받아서, 레이어 하나하나 뜯어보고, 따라 그려보고.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신기해한다. 다들 몰랐다는 듯이. 요즘 사람들은 유튜브 강의만 본다. 나쁘지 않다. 그런데 부족하다. 강의는 정제됐다. 과정이 생략됐다. PSD는 날것이다. 실수도 보인다. 시행착오도 보인다. 지운 레이어, 숨긴 레이어, 병합한 레이어. 다 보인다. 그게 배움이다. 완성본만 보면 모른다. 과정을 봐야 안다. 누가 물었다. "PSD 어디서 구해요?" "패트리온, 판타지아, 부스. 유료가 좋아요." "돈 내야 해요?" "당연하죠. 작가한테 가는 거고, 퀄리티 보장되고." 무료도 있다. 그런데 정리 안 된 게 많다. 시간 낭비다. 5달러, 10달러 아끼려다 몇 시간 날린다. 차라리 돈 내고 좋은 파일 받는다. 효율적이다. 한 달에 60달러 쓴다. 8만원. 비싸다. 그런데 책 사는 거랑 같다. 투자다. 한계도 있다 PSD 분석이 만능은 아니다. 볼 수 있는 건 '결과'다. '과정'은 상상해야 한다. 어떤 순서로 그렸는지 추측한다.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했는지 짐작한다. 틀릴 수도 있다. 내가 이해한 게 작가 의도랑 다를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내 방식으로 해석한다. 내 스타일로 흡수한다. 또 다른 한계. 손맛은 못 훔친다. 브러시 설정 똑같이 해도 느낌이 다르다. 선 긋는 속도, 힘 조절, 리듬감. 이건 못 본다. 그래서 따라 그린다. 직접 그려본다. 몸으로 익힌다. 시간 걸린다. 한 번으로 안 된다. 열 번, 스무 번 반복한다. 지루하다. 답답하다. "왜 안 되지?" 짜증 난다. 그래도 한다. 계속 한다. 어느 순간 된다. "어? 이 느낌?" 손에 익은 거다. 몸이 기억한 거다. 그때부터는 자연스럽다. 생각 안 해도 나온다. 자동으로 그려진다. 이게 '체득'이다. PSD 분석의 끝이다. 밤은 내 시간이다 낮은 회사 시간이다. 회사 일 한다. 월급 받는다. 밤은 내 시간이다. 내 공부 한다. 성장한다. 퇴근하고 씻는다. 밥 먹는다. 침대에 앉는다. 타블렛 켠다. "오늘은 뭘 볼까." 패트리온 확인한다. 새 파일 올라왔다. 다운로드한다. 포토샵 연다. 레이어 펼친다. "시작." 밤 11시. 새벽 3시까지 4시간. 내 공부 시간이다. 집중한다. 몰입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여자친구 전화 온다. "자러 안 와?" "조금만." 끊는다. 계속 본다. 미안하다. 그런데 이게 나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림 그리는 게 직업이다. 평생 할 거다. 늘지 않으면 도태된다. AI 나왔다. 무섭다. 내 자리 뺏길까 봐. 그래서 더 열심히 한다. PSD 분석한다. 프로들 손맛 배운다. 내 무기 만든다. AI가 못 하는 거 한다. 손맛, 감성, 스타일. 사람만 할 수 있는 거. 그래서 밤에 공부한다. 내 시간에 투자한다. 끝 새벽 3시. 눈 감긴다. 피곤하다. 레이어 187개 다 봤다. 브러시 10개 따라 그렸다. 메모 20줄 작성했다. 내일 회사에서 써먹어야지. 파일 닫는다. 컴퓨터 끈다. 침대에 눕는다. 머릿속에 레이어가 보인다. "피부 베이스 - 피부 그림자 - 피부 하이라이트". 웃음 나온다. "나 진짜 중독됐네." 후회 없다. 이게 내 길이다. 잠든다. 내일 또 PSD 뜯어볼 생각에 벌써 기대된다.[THUMBNAIL: anime style illustration, Korean male concept artist analyzing PSD file on glowing tablet screen late at night, multiple layer panels visible, warm cozy bedroom lighting,
- 03 Dec, 2025
마감 1주일 전의 기획 변경은 전쟁이다
마감 1주일 전의 기획 변경은 전쟁이다 월요일, 그날의 시작 월요일 오전 10시. 출근했다. 책상에 앉아서 타블렛 켰다. 지난주 금요일에 마무리한 캐릭터 컨셉 10개가 폴더에 정리돼 있었다. "이번 주는 디테일 작업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기획팀장이 지난주에 "이 방향으로 가요"라고 했었다. 메인 캐릭터 컨셉 3개, 서브 캐릭터 7개. 일주일 동안 밤 11시까지 남아서 그린 거다. 손목이 욱신거렸다. 파스 냄새가 났다. 어제 붙인 거다.커피 마시면서 아트스테이션 확인했다. 해외 아티스트들 작업물이 쭉 올라와 있었다. "저 퀄리티는 어떻게 나오는 거야." 한숨 나왔다. 오전 회의가 11시였다. 기획팀, 아트팀, 프로그래밍팀 합동. 마감이 2주 남았으니까 진행 상황 체크하는 자리. 회의실 들어갔다. 노트북 펴고 컨셉 파일 준비했다. 기획팀장이 먼저 말했다. "저, 그 캐릭터 컨셉 말이에요." 심장이 철렁했다. 이 말투는 안 좋은 거다. 5년 경력으로 안다. 회의실에서의 폭탄 선언 "윗분들이 어제 시안 보시고." 기획팀장이 말을 이었다. "방향을 좀 바꾸자고 하셨어요." 아트팀 팀장이 물었다. "어느 부분이요?" "컨셉 자체를요." 정적.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노트북 팬 소리만 들렸다. 나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우스를 꽉 쥐었다. "구체적으로 뭘 바꿔야 하는데요?" 내가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기획팀장이 자료를 띄웠다. 다른 게임 캐릭터들이었다. "이런 느낌으로 가자고 하세요." 보는 순간 알았다. 완전히 다른 컨셉이었다. 우리가 한 건 판타지 느낌. 그쪽은 SF 메카닉. "...이건 다시 그려야 하는데요." 아트팀 팀장이 말했다. "마감이 2주인데 가능해요?" "해야죠. 뭐." 기획팀장이 대답했다. 미안한 표정은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프로그래밍팀 팀장이 한숨 쉬었다. "우리도 애니메이션 다시 짜야 하네." 회의는 1시간 걸렸다. 결론은 하나. 다시 그린다. 그날 밤 11시의 슬랙 회의 끝나고 책상 돌아왔다. 점심은 못 먹었다. 입맛이 없었다. 폴더를 열었다. 일주일 동안 그린 컨셉들. 레이어가 200개 넘는 파일들. 러프 50장, 완성 10장. "이게 다 물거품이네." 혼잣말했다. 옆자리 선배가 들었는지 말했다. "처음은 아니잖아. 우리." 맞다.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후 내내 새 레퍼런스 찾았다. SF 메카닉 느낌. 핀터레스트, 아트스테이션 뒤졌다. 눈이 아팠다. 저녁 7시. 사람들 하나둘 퇴근했다. 나는 남았다. 팀장이랑 선배 둘도 남았다. "치킨 시킬까요?" 팀장이 물었다. "네." 대답했다. 배는 고팠다.밤 9시. 러프 스케치 10개 나왔다. 퀄리티는 애매했다. 당연하다. 하루 만에 나온 거니까. 밤 10시. 슬랙에 알림 떴다. 기획팀장이었다. "내일 오전에 러프 공유 부탁드려요." "네." 답장 보냈다. 짧게. 밤 11시. 슬랙에 또 알림. 이번엔 기획팀 막내. "아, 그리고요." 심장이 또 철렁했다. 밤 11시의 "그리고요"는 절대 좋은 소식이 아니다. "메인 캐릭터 성별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네?" "남자로 기획했는데 여자로 가자고 하세요." 손이 멈췄다. 타블렛 펜을 놓았다. "지금이요?" "죄송해요 ㅠㅠ 저도 방금 들었어요." 이모티콘까지 붙었다. 미안한 건 알겠다. 하지만. 키보드를 쳤다. 지우고 다시 쳤다. "내일 아침까지 수정할게요." 전송. 멘붕의 시작 책상에 엎드렸다. 5분. 아니, 10분쯤 그랬던 것 같다. 팀장이 물었다. "괜찮아?" "네." 일어났다. 괜찮지 않았다. 파일 새로 열었다. 러프 10개 중에 메인 캐릭터 3개. 남자로 그린 거. 이걸 여자로 바꾼다. 체형부터 다르다. 의상도 다르다. 실루엣 자체가 달라진다. "시발." 욕이 나왔다. 작게. 팀장이 못 들을 정도로. 마우스 잡았다. 레이어 지웠다. 새로 그렸다. 시간 확인했다. 밤 11시 30분. 여자친구한테 카톡 왔다. "언제 와?" "12시쯤?" 거짓말이었다. 어림없다. 2시는 돼야 나갈 것 같았다. "또 야근이야? ㅠㅠ" "응. 미안." "몸 챙겨." "ㅇㅇ" 답장 보내고 폰 뒤집었다. 새벽 2시의 결과물 새벽 1시. 러프가 나왔다. 여자 메인 캐릭터. SF 메카닉 느낌. 퀄리티는. 글쎄.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내일 아침 회의가 10시. 지금 퇴근해도 5시간밖에 못 잔다. 파일 저장했다. 슬랙에 올렸다. "러프 올립니다. 내일 아침에 확인 부탁드려요." 전송하고 컴퓨터 껐다. 팀장이 말했다. "고생했어. 들어가." "네. 팀장님도요." 사무실 나왔다. 건물 밖은 추웠다. 11월이었다. 택시 잡았다. 기사님이 물었다. "야근하셨어요?" "네." "요즘 다들 힘드시네요." "그러게요." 차 안에서 눈 감았다. 머릿속에 캐릭터 러프가 보였다. 선이 떨렸다. 피곤해서 손이 떨린 거다. "다 부질없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일주일 그린 게 하루 만에 날아갔다. 내일 그릴 것도 또 바뀔 수 있다. 집 도착했다. 2시 30분.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 봤다. 트위터 알림이 30개. 내 팬아트에 좋아요 달린 거. "이게 진짜 하고 싶은 그림인데." 중얼거렸다. 잠들었다. 꿈에서도 그림 그렸다. 악몽이었다. 다음날 아침 알람 소리에 깼다. 8시. 4시간 잤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손목도 아팠다. 어깨도 뻐근했다. 씻고 나왔다. 거울 봤다. 다크서클이 입술까지 내려왔다. "망했다." 출근 준비했다.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 입었다. 갈아입을 기력이 없었다. 편의점 들렀다. 박카스 두 개 샀다. 레드불도 하나. 9시 30분 출근. 30분 일찍 왔다. 러프 수정할 게 있을 것 같아서. 책상 앉았다. 슬랙 열었다. 기획팀장 메시지. 새벽 3시에 온 거. "러프 확인했습니다. 전체적으로 괜찮은데요." 숨을 쉬었다. 조금 안심했다. "한 가지만 수정 부탁드려요." 또 왔다. "메인 캐릭터 의상을 좀 더 화려하게 해주세요." "..." 키보드 쳤다. "알겠습니다." 10시 회의. 러프 보여줬다. 반응은 괜찮았다. "이 방향으로 가죠." 기획팀장이 말했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완성본 부탁드려요." 일주일. 디테일 작업에 일주일. 원래 일정이랑 똑같다. 하지만 원래 일정은 러프가 이미 있었다. 지금은 어제 밤에 그린 게 전부다. "네. 하겠습니다." 대답했다. 회의 끝나고 자리 왔다. 선배가 말했다. "살아남았네." "아직 모르죠." "뭐, 또 바뀔 수도 있지." 웃었다. 웃긴지 슬픈지 모르겠다. 마감까지 일주일 그날부터 일주일이 지옥이었다. 매일 밤 10시 퇴근. 주말도 나왔다. 토요일 8시간, 일요일 6시간. 손목에 파스 5장 붙였다. 효과는 없었다. 그냥 그렸다. 기획 변경은 두 번 더 있었다. 소소한 거. 의상 색상, 무기 디자인. "이건 애교지." 팀장이 말했다. 맞다. 성별 바뀌는 것보단 낫다. 여자친구랑은 일주일 동안 못 만났다. 카톡만 했다. 전화할 기력도 없었다. "이번 주만 지나면 괜찮아." 거짓말했다. 다음 프로젝트도 있다. 또 반복된다. 금요일 밤. 최종 파일 제출했다. 메인 캐릭터 3개, 서브 7개. 총 10개. 기획팀장이 확인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슬랙 메시지.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이모티콘 세 개. 박수, 파이팅, 맥주. 팀장이 말했다. "회식 가자." "네." 고깃집 갔다. 고기 구웠다. 소주 마셨다. 취했다. 많이. 집 들어와서 침대에 쓰러졌다. 옷도 안 벗었다. 핸드폰 봤다. 트위터. 내 팬아트가 리트윗 500개. "이게 진짜 하고 싶은 거야." 말했다. 아무도 안 들었다. 잠들었다. 월요일, 그리고 월요일 출근했다. 10시. 책상 앉았다. 슬랙 열었다. 기획팀장 메시지. "고생하셨습니다. 최종 승인 났어요." 안도했다. "다음 프로젝트 기획안 공유합니다." 파일 첨부. 열었다. "신규 캐릭터 20개." "마감 3주." "..." 커피 마셨다. 쓰디쓴 맛. 타블렛 켰다. 시작이다. 또.마감 전 기획 변경은 일상이다. 익숙해지지 않지만 계속된다. 그게 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