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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스테이션에서

아트스테이션에서 발견한 나보다 잘하는 29살

아트스테이션에서 발견한 나보다 잘하는 29살

밤 11시, 아트스테이션 퇴근하고 집에 왔다. 샤워하고 타블렛 켰다. 습관처럼 아트스테이션을 연다. 메인에 뜨는 그림. 클릭했다. 프로필을 본다. 29세. 나랑 같다.스크롤을 내린다 캐릭터 컨셉 10장. 전부 다른 프로젝트다. 실루엣이 명확하다. 컬러 밸런스가 완벽하다. 디테일은 살아있는데 과하지 않다. 라이팅이 이렇게 들어가면 이런 느낌이구나. 천 주름을 저렇게 처리하면 되는구나. 금속 재질감이 저 정도면... 내 그림 폴더를 연다. 비교한다. 한숨이 나온다. 경력은 3년 프로필에 적혀있다. 3년차래. 나는 5년인데. 그는 중국 회사 다닌다. 포트폴리오에 실린 게임 2개. 전부 출시됐다. 내가 작업한 프로젝트는 3개. 출시된 건 1개. 나머지는 엎어졌다. 내 탓은 아니다. 기획이 바뀌고, 투자가 끊기고, 회사 사정이 있었다. 그래도 포폴은 비어있다.새벽 1시 여전히 그의 그림을 본다. PSD는 없으니 레이어 구조는 모른다. 하지만 작업 순서는 보인다. 큰 면부터 잡았다. 그림자 영역을 명확히 구분했다. 디테일은 마지막에 포인트로 넣었다. 나도 안다. 이론은. 실전에서는 디테일부터 붙잡는다. 전체를 못 보고 부분만 본다. 그러다 시간 없어서 러프로 제출한다. 팀장이 말한다. "완성도가..." 안다. 댓글을 읽는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전부 칭찬이다. "Amazing work!" "How long did this take?" "Do you have tutorial?" 튜토리얼이 있을 리 없다. 저 정도면 그냥 손에서 나온다. 나도 튜토리얼 본다. 유튜브에 수십 개. 북마크에 백 개 넘게 저장돼있다. 본 적은 있다. 따라한 적은 없다. 시간이 없어서. 아니다. 핑계다.새벽 2시, 그림을 그린다 타블렛을 연다. 새 캔버스. 오늘은 제대로 그려본다. 그의 방식대로. 큰 면부터. 실루엣 먼저. 30분 지났다. 뭔가 이상하다. 지운다. 다시 그린다. 1시간. 여전히 이상하다. 채도가 높은가. 명도가 문제인가. 구도를 바꿔볼까. 레퍼런스를 찾는다. 핀터레스트, 구글, 다시 아트스테이션. 레퍼런스만 2시간. 새벽 4시 그림은 반도 못 그렸다. 내일 출근이다. 10시까지. 5시간 자면 된다. 아니다. 씻고 준비하면 4시간. 그림을 저장한다. 파일명: "practice_0324_fail" 폴더에 비슷한 파일이 62개 있다. 전부 미완성이다. 출근길 지하철 졸리다. 어제 4시에 잤다. 핸드폰을 본다. 트위터. 타임라인에 또 누군가의 그림. 좋아요 5천. 잘 그렸다. 나보다. 언팔은 안 한다. 자극받으려고 팔로우한 거다. 자극받았다. 그래서 어젯밤 4시까지 깼다. 오늘 컨디션은 최악이다. 회사 도착 자리에 앉는다. 모니터를 켠다. 어제 작업하던 파일. NPC 컨셉 5종. 기획서를 다시 읽는다. "평범한 마을 사람들, 하지만 개성 있게" 모순이다. 평범한데 개성 있게. 그래도 그린다. 이게 일이다. 점심시간. 동료가 말한다. "어제 아트스테이션 봤어? 걔 미쳤더라." 본 사람이 나만은 아니구나. 오후 3시, 리뷰 팀장 앞에 앉았다. NPC 컨셉 5종. 화면에 띄운다. 팀장이 스크롤을 내린다. 10초 정도. "음..." 이 음이 길면 별로라는 뜻이다. "괜찮은데, 좀 더 임팩트 있게 갈 수 있을까?" 있다. 시간만 주면. "네, 수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실루엣이 좀... 이 캐릭터랑 비슷해." 다르게 그렸는데. 팀장 눈엔 비슷한가보다. "다시 그려볼게요." 리비전 3차다. 같은 NPC에. 퇴근 후, 카페 집에 가기 싫다. 카페에 앉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노트북을 편다. 개인 작업. 커미션 2건 밀려있다. 마감은 이번 주. 하나를 연다. 캐릭터 전신 일러스트. 30분 그렸다. 손이 안 간다. 아트스테이션의 그 그림이 생각난다. 29살. 3년차. 나는 뭐하고 있나. 밤 10시, 집 샤워했다. 침대에 눕는다. 핸드폰을 본다. 다시 아트스테이션. 그의 프로필. 팔로워 15만. 내 트위터는 8천. 적은 건 아니다. 근데 저 숫자를 보면. 인스타그램도 확인한다. 같은 사람. 포스팅 200개. 전부 퀄리티가 일정하다. 꾸준함이 다르구나. 나는 일주일에 하나 올리기도 힘들다. 회사 일 하고 나면 기력이 없다. 핑계다. 또. 새벽, 다시 타블렛 앞에 앉았다. 어제 그린 파일. "practice_0324_fail" 이어서 그린다. 한 시간. 조금 나아졌다. 두 시간. 확실히 전보다 낫다. 저장한다. 파일명: "practice_0325_progress" fail에서 progress로. 작은 발전이다. 하지만 그 29살과 비교하면. 여전히 멀다. 내일도 그릴 거다. 모레도. 언젠가는. 아니다. 언젠가는 없다. 내일 더 잘 그리면 된다. 오늘보다. 그것만.같은 나이인데 이렇게 다르다. 그래도 그린다. 비교는 자극이다. 포기는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