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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nder
- 12 Dec, 2025
Blender 좀 배워야 하는데: 3D 시대의 2D 아티스트의 불안감
Blender 좀 배워야 하는데 오늘도 기획팀에서 요청이 들어왔다. "이 캐릭터 3D 베이스 모델 있으면 각도 확인하기 편한데요." 웃으면서 답했다. "네, 확인해볼게요." 속으로는 한숨 나왔다. Blender 아이콘을 쳐다봤다. 보라색 아이콘. 설치한 지 3개월. 실행 횟수는 총 7번. 제대로 써본 적은 0번.2D로 5년 먹고살았는데 나는 2D 원화가다. Photoshop 단축키는 눈 감고도 누른다. Ctrl+J, Ctrl+T, Alt+Delete. 손가락이 기억한다. 레이어 200개 넘는 파일도 거뜬하다. 브러시 커스텀 300개 보유. 내 그림체는 확고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자꾸 들린다. "3D 베이스 깔고 그리면 빠르지 않아요?" "Blender로 러프 잡으면 시간 절약되는데." "요즘 아티스트들은 다 쓰던데요." 마지막 말이 제일 아프다. 요즘 아티스트들은. 나도 요즘 아티스트인데.튜토리얼은 3번 클릭했다 유튜브에 'Blender 초보' 검색했다. 영상 8000개 나온다. '왕초보', '입문', '기초'. 다 비슷해 보인다. 첫 번째 시도. "Blender 10분 완성!" 재생 눌렀다. 1분 만에 큐브가 10개 나온다. 나는 아직 화면 조작 중. 영상 껐다. 두 번째 시도. "하루 만에 캐릭터 모델링" 2시간짜리 영상. 30분까지 봤다. 강사는 벌써 UV 얘기한다. 나는 아직 정점 선택 중. 일시정지했다. 세 번째 시도. "절대 포기 안 함" 다짐하고 시작했다. modifier 메뉴에서 길 잃었다. 창 껐다.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Photoshop은 직관적이었다. 브러시 누르면 그려진다. 레이어 쌓으면 그림 완성된다. 논리가 명확하다. Blender는 다르다. 마우스 우클릭이 선택이다. 휠 클릭이 화면 회전. 단축키가 외계어다. G는 이동, S는 크기, R은 회전. 왜 Move의 M이 아닌가. 그리고 화면이 3개다. 뷰포트, UV에디터, 셰이더 노드. 어디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2D는 평면이다. 내가 보는 게 결과물이다. 3D는 입체다. 내가 보는 건 한 면일 뿐. 돌려야 확인된다. 이 감각이 낯설다. 그리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다. 이게 제일 어렵다. 회사에서는 못 배운다 점심시간에 옆 자리 후배한테 물었다. "너 Blender 할 줄 알아?" "아뇨, 저도 못 해요." 안도했다. 팀장님은 쓴다. "이거 간단한데?" 모니터 보여주신다. 손이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노드 10개가 1분 만에 연결된다. "봤지? 쉽지?" 못 봤다. 배우고 싶다고 말할까 고민했다. "요즘 바쁜 거 아는데, Blender 좀..." 말이 안 나왔다. 업무 시간에 배울 수는 없다. 마감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개인 시간에 해야 한다. 퇴근하면 9시. 그림 그리기도 빡빡하다. 주말에 하자. 토요일은 여자친구 만나는 날. 일요일은 다음 주 준비. 월요일이 온다. 3개월째 반복 중. 신입들은 이미 쓴다 포트폴리오 리뷰 갔다. 23살 지원자. "3D 베이스 작업 가능합니다." 포폴에 Blender 로고. 작품 봤다. 캐릭터 각도 30개. 조명 다 다르다. "렌더링해서 그 위에 페인팅했습니다." 깔끔했다. 나는 29살에 이걸 못 한다. 5년 경력이 무색하다. 요즘 학원은 3D를 기본으로 가르친다더라. Maya, Blender, ZBrush. 2D는 부가 옵션. 세대가 바뀌고 있다. 나는 과도기 세대다. 2D로 입사했지만. 3D 시대를 살아야 한다. 어정쩡하다. AI보다 Blender가 더 무섭다 AI 그림은 두렵다. 하지만 아직은 디테일이 약하다. 손 못 그린다. 구도 엉성하다. "사람 손이 필요해요." 이렇게 위로한다. Blender는 다르다. 완벽한 파스펙티브. 정확한 라이팅. 360도 회전 가능. 이건 능력이다. AI는 대체 위협. Blender는 진화 요구. 후자가 더 무겁다. "AI는 도구일 뿐이에요." 다들 이렇게 말한다. "Blender도 도구예요." 그럼 나는 왜 못 쓰나. 도구를 못 쓰면 도태된다. 이게 현실이다. 3D 모르면 안 되나 2D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었다. 좋은 그림은 차원을 안 가린다. 실력이 본질이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3D 에셋 있으면 수정 빠른데." "각도 바꿔달라는데 다시 그려야 해요?" "이 소품 3D로 만들어두면 재활용되는데." 효율 얘기가 나온다. 예술 얘기가 아니다. 회사는 비즈니스다. 시간은 돈이다. 3D가 빠르면 3D를 쓴다. 내 고집은 비용이 된다. 안 배워도 되냐고? 아니다. 배워야 한다. 문제는 마음이다. 시작이 제일 어렵다 Blender 켰다. 기본 큐브가 반긴다. "다시 만나네." 벌써 4번째다. X 눌러서 삭제. 튜토리얼대로. Shift+A로 메쉬 추가. UV Sphere 선택. 여기까지는 했다. 그다음이 문제다. Edit 모드 들어간다. 정점이 500개 보인다. 뭘 선택해야 하나. Alt 누르면 링 선택. Ctrl 누르면 뭐더라. 10분 지났다. 구만 3개 만들었다. 포기하고 싶다. 그런데. 이번엔 창을 안 껐다. "한 시간만 해보자." 오늘의 목표. 캐릭터는 무리. 간단한 소품 하나. 검색했다. "Blender 칼 모델링" 15분짜리 영상. 따라한다. 30분 걸렸다. 칼날이 좀 휘었다. 손잡이가 이상하다. 그래도 칼이다. 저장했다. 'sword_001.blend' 첫 작품. 별로 안 이쁘다. 그래도 만들었다. 완벽하게 못 해도 된다 착각했던 것 같다. Blender 전문가 될 필요는 없다. 나는 컨셉 아티스트다. 3D는 보조 도구. 파스펙티브 참고용. 러프 레이아웃용. 조명 테스트용. Maya 아티스트처럼 할 필요 없다. 리깅 몰라도 된다. 애니메이션 안 해도 된다. UV 완벽 안 해도 된다. 내가 필요한 것만. 내 그림에 도움 되는 것만. 이렇게 생각하니 좀 편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일주일째 저녁마다 30분씩. Blender 만지고 있다. 아직도 어렵다. 그런데 조금씩 보인다. 동료 아티스트 그림 봤다. "이거 3D 베이스네." 알 수 있다. 파스펙티브가 너무 정확하다. 라이팅 각도가 일정하다. ArtStation 둘러봤다. 3D 쓴 작품이 반이다. 'Making of' 보면 다 나온다. Blender로 레이아웃 잡고. Photoshop으로 페인팅. 이게 요즘 방식이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 부럽기도 하고. 나도 하고 싶기도 하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천천히 가기로 했다 3개월 안에 마스터하겠다는 목표. 지웠다. 1년 걸려도 된다. 2년 걸려도 된다. 내 속도로 간다. 매일 30분. 주말엔 1시간. 이것만 지킨다. 완벽한 캐릭터 모델링. 목표 아니다. 간단한 소품 만들기. 이게 목표다. 검, 의자, 램프, 상자. 하나씩 만든다. 내 그림에 쓴다. 실력은 천천히 늘 거다. 조급해하지 않는다. 2D 아티스트는 안 없어진다 가끔 생각한다. 3D 시대에 2D는 구식인가. 아니다. 3D는 베이스다. 감성은 2D에서 나온다. Blender로 만든 모델. 그 자체로는 차갑다. 색감, 터치, 분위기. 이건 손으로 그려야 산다. 3D 아티스트가 페인팅 못 하듯. 2D 아티스트가 3D 못 해도 된다. 하지만 둘 다 조금씩 하면. 더 강해진다. 나는 2D가 본업이다. 3D는 무기 하나 더.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도 조금 저녁 9시. 퇴근했다. Blender 켰다. 오늘은 헬멧 만든다. 30분 목표. "Space bar... 아니 Shift+A." 아직도 헷갈린다. 천천히 한다. "Loop cut... Ctrl+R." 칼선 들어간다. 하나씩 따라 한다. 30분 지났다. 헬멧 반쪽 완성. Mirror 모디파이어 적용. 양쪽 완성. 이쁘지는 않다. 그래도 헬멧이다. 저장. 'helmet_001.blend' 내일은 UV 펴본다. 텍스처는 모레. 천천히 간다. 포기는 안 한다.3D는 벽이 아니라 계단이다. 한 칸씩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