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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그림 뉴스를 본 날의 불안감

AI 그림 뉴스를 본 날의 불안감

뉴스피드 출근길 지하철에서 봤다. 뉴스 헤드라인. "AI, 이제 게임 캐릭터도 그린다... 3분이면 완성" 스크롤을 멈췄다. 기사를 열었다. 어떤 스타트업에서 만든 AI래. 텍스트만 입력하면 캐릭터 컨셉아트를 뽑아준다고. 클릭 몇 번이면 의상 바리에이션까지. 베타 테스터 후기가 달려있었다. "이제 아티스트 안 구해도 되겠네요 ㅋㅋ" 회사 도착했다. 자리에 앉았다. 포토샵을 켰다. 어제 그리던 캐릭터가 보였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주름 하나하나. 8시간 걸린 작업이다.마우스를 잡았다. 손이 무겁다. 회의실에서 오전 10시. 팀 미팅. 팀장이 말했다. "요즘 AI 그림 툴들 봤어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말했다. "미드저니 결과물 보니까 퀄리티 괜찮던데요." 팀장이 웃었다. "우리 일자리는 안전하겠죠. 캐릭터는 스토리가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팀장 표정이. 확신에 찬 게 아니었다. 회의가 끝났다. 자리로 돌아왔다. 기획팀에서 메신저가 왔다. "컨셉 5개 더 부탁드려요. 내일까지요." 5개. 하루에. 예전 같으면 불가능하다고 했다. 오늘은 "네"라고 답했다. AI는 3분이면 된다는데. 나는 하루에 5개도 못 그리면 안 되는 거 아닐까.점심 먹으면서 아트스테이션을 봤다. 검색창에 "AI art" 쳤다. 결과물들이 쏟아졌다. 퀄리티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라이팅이 자연스럽다. 구도가 탄탄하다. 컬러 하모니도 괜찮다. 댓글을 봤다. "이거 진짜 AI가 그렸어요?" "프롬프트 공유 가능하신가요?" "아티스트 시대 끝났네 ㅋㅋ" 밥맛이 없어졌다. 5년의 무게 오후 3시. 작업 중. 신입이 물었다. "선배님, 손 떨림 보정 어떻게 써요?" 보정 설정을 알려줬다. 브러시 세팅도 공유했다. 레이어 구조 설명하고. 컬러 피커 쓰는 법도. 5년이면 쌓이는 게 이런 거다. 단축키. 워크플로우. 효율적인 러프 방법. 빠른 수정 노하우. 근데 AI한테는 필요 없는 것들이다. AI는 손 떨림이 없다. 레이어를 안 쓴다. 러프 과정이 없다. 수정은 프롬프트 한 줄이면 된다. 저녁 7시. 퇴근했다. 집 가는 길에 편의점 들렀다. 맥주 두 캔 샀다. 원룸 문 열고 들어왔다. 불 켰다. 타블렛이 보인다. 책상 위에 그림 자료집들. 벽에 붙인 캐릭터 시트들. 5년 동안 모은 것들이다. 의미가 있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맥주를 땄다. 한 모금 마셨다. 유튜브를 켰다. 추천 영상에 또 떴다. "AI 그림으로 월 500만원 버는 법" "미드저니로 일러스트 10분 만에 그리기" "아티스트는 이제 끝인가?" 영상을 틀었다. 꺼버렸다. 다시 틀었다. 끝까지 봤다. 댓글창을 내렸다. "그림쟁이들 이제 뭐 먹고 살아요 ㅋㅋ" "AI한테 못 지는 게 뭐 있나요?" "창의성은 못 따라한다던데... 그것도 시간문제 아님?" "전업러들 각오하세요" 댓글을 읽다가. 마지막에. 한 댓글이 보였다. "저도 원화가인데 요즘 매일 불안해요. 같은 마음이신 분들 많으시네요." 좋아요가 327개였다. 밤 2시 샤워하고 나왔다. 침대에 누웠다. 잠이 안 온다. 핸드폰을 들었다. 트위터를 켰다. 타임라인에 그림쟁이들 글이 보인다. "AI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뭐 해야 할까요" "요즘 그림 그리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져요" "5년 배운 건데 3분짜리한테 질 수도 있다니" 리트윗했다. 좋아요 눌렀다. 같은 고민하는 사람이 나만 아니라는 게. 위로가 되면서도. 더 무섭다. 업계 전체가 흔들리는 거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책상에 앉았다. 타블렛을 켰다. 클립스튜디오를 열었다. 새 캔버스. 3000x3000. 뭘 그릴까 생각했다. 아무 생각이 안 났다. 프롬프트로 설명 못 할 그림을 그려야 하나. AI가 못 그리는 걸 그려야 하나. 근데 그게 뭔데. 손이 안 움직인다. 10분 있었다. 그냥 빈 캔버스만 보고. 창을 닫았다. 유튜브 켰다. 아무 영상이나 틀었다. 새벽 2시 40분. 침대로 돌아왔다. 천장을 봤다. 5년이다. 5년 동안 매일 그렸다. 러프 몇천 장. 완성작 몇백 개. 손목에 굳은살. 허리 디스크 초기. 밤새 작업하던 날들. 리젝 당하고 다시 그리던 시간들. 그게 3분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거다.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단톡방을 봤다. 대학 동기들 방. 마지막 메시지가 어제였다. 누가 올린 AI 그림 뉴스. 아무도 답을 안 달았다. 다들 생각은 똑같을 거다. 말 안 해도 안다. 불안하다는 거. 무섭다는 거. 내일이 안 보인다는 거. 메시지 입력창을 눌렀다. 뭐라고 칠까 했다. 지웠다. 핸드폰을 내려놨다. 눈을 감았다. 내일 출근하면. 또 그림 그린다. 컨셉 5개. 하루 만에. AI보다 빠를 순 없다. 근데 AI보다 나은 게 뭔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려야 하니까 그린다. 5년 동안 해온 거니까. 다른 건 할 줄 모르니까. 그게 5년차 게임 원화가의 2024년이다. 새벽 3시. 겨우 잠들었다.내일도 출근한다. 그림 그린다. 그게 답인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