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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팔로워는
- 08 Dec, 2025
트위터 팬아트 8000팔로워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토요일 오후 3시 또 올렸다. 이번 주 핫한 신작 게임 캐릭터 팬아트. 2시간 걸렸다. 러프 30분, 채색 1시간, 마무리 30분. 효율적으로 했다고 생각했는데 업로드 버튼 누르는 순간 손이 떨렸다. 8247명이 보고 있다.처음엔 좋았다. 3년 전 팔로워 300명일 때만 해도 '와, 내 그림 좋아해 주는 사람이 300명이나 돼' 이랬다. 1000명 넘을 땐 신났다. 2000명 땐 '진짜 잘 그리나 봐' 착각했다. 5000명 넘어가면서부터 이상했다. 지금은 8000명. 숫자가 올라갈수록 그림 올리기가 무섭다. 댓글 창을 열면 "이번 건 별로네요" "전에 그린 거보다 못한 것 같은데" "손 비율이 이상해요" "이 캐릭터는 이렇게 안 생겼는데요" 300명일 때는 "우와 멋져요!" "잘 봤습니다!" 이런 댓글뿐이었다. 8000명이 되니까 다르다. 100명 중 1명만 비판적이어도 80명이다. 숫자가 보인다. 매번.회사에서 하루 종일 수정 먹고 집 와서 또 수정 댓글 읽는 기분이 뭔지 아나. 지친다. 좋아요는 평균 800개 나온다. 리트윗 200개. 북마크 500개. 객관적으로 보면 좋은 수치다. 근데 어제 그린 건 좋아요 650개였다. 150개 차이에 밤새 생각했다. '뭐가 문제였지? 구도? 채색? 타이밍?' 병이다. 알고 있다. 금요일 밤의 루틴 퇴근하고 9시. 샤워하고 치킨 시켜 먹고 10시. 타블렛 켠다. "오늘은 뭘 그릴까." 예전엔 그냥 그리고 싶은 거 그렸다. 좋아하는 캐릭터, 마음에 드는 구도, 시도해보고 싶은 채색. 지금은 다르다. "지금 뭐가 핫하지?" "어떤 게임이 트렌드지?" "어떤 캐릭터 그려야 반응 잘 나올까?" 트위터 타임라인 1시간 본다. 유튜브로 신작 게임 트레일러 본다. 픽시브 랭킹 확인한다. 전략적으로 그린다. 취미가 아니라 콘텐츠를.새벽 2시에 완성한다. 바로 올리지 않는다. "내일 토요일 오후 3시에 예약 업로드." 통계 봤다. 토요일 오후 3시~5시 사이가 반응 제일 좋다. 금요일 밤은 타임라인이 빠르게 흘러가서 묻힌다. 일요일 밤은 다들 우울해서 좋아요를 덜 누른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으면서도 한다. 8000명이 기다린다는 착각. 회사 동료가 물었다 "형 트위터 팔로워 많다며? 부업 의뢰 많이 들어오죠?" 많이 들어온다. 한 달에 캐릭터 커미션 5~6건. 건당 30만원에서 50만원. 많을 땐 월 200만원 번다. 회사 월급이 세후 350만원. 커미션까지 하면 550만원. "프리랜서 안 해요? 그 정도면 되지 않아요?" 된다. 계산해봤다. 여러 번. 캐릭터 일러스트 단가 50만원으로 잡고, 한 달에 10건만 해도 500만원이다. 지금 회사 월급보다 많다. 거기에 개인 굿즈 만들어서 팔면 더 벌 수 있다. 근데 안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년에도 8000명일까?" 팔로워는 변한다 2년 전 팔로워 5000명이었던 선배 있다. 지금 3000명이다.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봤다. "그림 스타일 바꿨더니 팔로워가 줄더라. 그리고 한 달 안 올렸더니 더 줄었어." 무섭다. 트위터 팔로워는 은행 잔고가 아니다. 적금이 아니다. 쌓이지 않는다. 관리해야 한다. 주 1회는 업로드해야 한다. 트렌드 따라가야 한다. 댓글 달아야 한다. 다른 작가 그림에 좋아요 눌러야 한다. 안 하면 줄어든다. 회사는 다르다. 출근만 하면 월급 나온다. 실적 안 좋아도 당장 잘리진 않는다. 연차 쌓인다. 4대 보험 있다. 프리랜서는? 일 안 들어오면 수입 0원이다. "8000명 팔로워 있으니까 걱정 없겠네요." 걱정뿐이다. 일요일 저녁의 불안 이번 주 팬아트 반응 좋았다. 좋아요 950개. 역대급이다. 기분 좋다. 5분간. 그다음 생각. "다음 주엔 뭘 그리지?" "이번보다 반응 안 좋으면 어떡하지?" "이 퀄리티 매주 유지할 수 있나?" 회사 일은 시키는 거 한다. 기획서 넘어오면 그린다. 수정 지시 오면 고친다. 마감 지키면 된다. 트위터는 다르다.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 기획도 내가. 마감도 내가. 홍보도 내가. 자유로운 게 아니라 모든 책임이 내게 있다. 8000명이 기다린다는 압박감.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데 혼자 그렇게 생각한다. 미친 거 맞다. 여자친구가 말했다 "요즘 주말에 맨날 그림만 그리네. 같이 놀자." 미안하다고 했다. 다음 주부터는 안 그린다고. 거짓말이다. 다음 주도 그린다. 안 그리면 불안하다. 팔로워 줄까 봐. 사람들이 날 잊을까 봐. "팔로워가 뭐라고 그래? 진짜 친구도 아니고." 맞는 말이다. 8000명 중에 내 이름 아는 사람 몇 명이나 될까. 내가 아프면 걱정해 줄 사람 있을까. 근데 숫자가 주는 안정감이 있다. '나 잘 그리는 사람이야. 8000명이 증명해 줘.' 회사에서 상사한테 "이거 다시 그려" 들어도 버틸 수 있다. '트위터에선 인정받는데 뭐' 하면서. 병적인 거 안다. 근데 끊을 수가 없다. 회사 후배의 질문 "선배님은 회사 일이랑 개인 작업 어떻게 구분해요?" 구분 못 한다. 회사에서 배운 기술로 트위터 그림 그린다. 트위터 반응 보고 회사 컨셉에 적용한다. 경계가 없다.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모르겠다. 후배는 순수하다. "저는 회사 일은 회사 일이고, 제 그림은 제 그림이에요." 부럽다. 나도 예전엔 그랬다. 회사에서 게임 캐릭터 그리고, 집에서 내 취향대로 그렸다. 8000명 생기면서 바뀌었다. 집에서 그리는 그림도 '누가 볼 그림'이 됐다. 순수하게 나만 보려고 그린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새벽 3시의 솔직함 술 한 잔 했다. 혼자. 트위터 들어갔다. 팔로워 목록 봤다. 8247명. 이 중에 진짜 내 그림 좋아하는 사람 몇 명이나 될까. 대부분은 팔로우 수백 명 하는 사람들이다. 타임라인에 스쳐 지나가는 그림 중 하나일 뿐. 인정받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인정받을수록 불안해진다. 역설이다. 팔로워 300명일 때가 제일 행복했다. '내 그림 좋아해 주는 사람이 300명이나 있어' 순수하게 기뻤다. 8000명 됐는데 행복하지 않다. '8000명을 유지해야 해. 더 늘려야 해. 떨어지면 안 돼.' 숫자가 목표가 됐다. 프리랜서 하면 더 불안할 것 같다. 회사는 최소한 고정 수입이 있다. 프리랜서는 매달 8000명을 증명해야 한다. '나 일 잘해요'를. 못 하겠다. 그래도 그린다 월요일 아침. 출근한다. 점심시간에 트위터 확인한다. 토요일에 올린 그림 좋아요 1024개 됐다. 1000 넘었다. 기분 좋다. 퇴근하고 집 온다. 타블렛 켠다. "이번 주엔 뭘 그리지." 또 그린다. 축복인가 저주인가 묻는다면. 둘 다다. 8000명이 있어서 그림 그릴 이유가 생긴다. 8000명이 있어서 그림 그리기 힘들어진다. 없으면 외롭고, 있으면 불안하다. 근데 솔직히. 내일도 그릴 거다. 8000명이 보든 말든. 아니, 본다는 게 중요한 거다. 누가 보니까 끝까지 그린다. 누가 보니까 퀴리티 올린다. 누가 보니까 포기 안 한다. 혼자였으면 진작 관뒀을 거다. 그러니까 축복이다. 불편한. 답은 없다 프리랜서 할 거냐고? 모르겠다. 다음 달에도 똑같은 고민할 거다. 내년에도. 8000명이 1만 명 되면 결정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때도 똑같을 거다. '1만 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하겠지. 숫자는 답이 아니다. 근데 숫자를 본다. 매일.팔로워 8000명은 자랑도 아니고 실력도 아니다. 그냥 불안의 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