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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의
- 27 Dec, 2025
밤 10시의 개인 작업이 아침 6시까지 이어지는 날들
퇴근하고 시작하는 진짜 일 7시에 퇴근했다. 9시 반이다. 저녁 먹고,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다가 일어났다. 태블릿 켰다. 회사에서 8시간 그렸는데 또 그린다. 이상한가. 나도 안다. 이상하다는 거. 하지만 회사 그림이랑 다르다. 오늘 회사에선 '전사 캐릭터 갑옷 디테일 수정 5차'였다. 기획팀이 '좀 더 무거운 느낌'이래서 바꿨더니, 마케팅팀이 '너무 육중하다'고 했다. 결국 2차안으로 돌아갔다. 지금 그리는 건 내 캐릭터다. 아무도 터치 안 한다. 실루엣도 내 마음이다. 이게 진짜 그림이다.10시가 되면 손이 간다 회사 일은 의무다. 개인 작업은 선택이다. 근데 선택인데 안 하면 불안하다. '오늘 아무것도 안 그렸네' 하는 생각. 회사에서 8시간 그렸는데도. 10시쯤 되면 손이 근질거린다. 트위터 타임라인 보다가 자극받는다. 누군 멋진 팬아트 올렸다. 누군 커미션 완성본 올렸다. '나도 그려야지.' 시작하면 1시간만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게 안 된다. 러프 잡으면 채색하고 싶다. 채색하면 디테일 넣고 싶다. 디테일 넣으면 배경도 그려야 할 것 같다. 새벽 2시다.회사 그림 vs 내 그림 회사 그림은 비즈니스다. 매출이 목표다. KPI가 있다. '이 캐릭터로 얼마나 뽑을까' 생각하며 그린다. 디렉터가 '가슴 라인 좀 더'라고 하면 그린다. 마케팅에서 '이 피부색은 해외에서 안 먹힌다'고 하면 바꾼다. 내 취향은 없다. 데이터가 취향이다. 근데 밤에 그리는 건 다르다. 좋아하는 캐릭터 팬아트. 머릿속에 있던 오리지널 캐릭터. 아무도 안 봐도 되는 습작. 이게 재밌다. 회사 일이 재미없다는 건 아니다. 프로젝트 잘 나오면 뿌듯하다. 유저들이 '아트 진짜 좋다' 하면 기쁘다. 근데 그건 팀의 성취다. 밤 작업은 내 성취다. 차이가 크다. 새벽 4시의 몰입 가장 집중되는 시간이 있다.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 세상이 조용하다. 카톡도 안 온다. 슬랙도 조용하다. 내일 회의 같은 것도 아직 멀다. 붓 터치에만 집중한다. 이 하이라이트 위치. 이 그림자 농도. 이 색감 조화. 회사에선 못 느끼는 거다. 회사는 항상 시간에 쫓긴다. '이거 오늘까지' '내일 검수 들어갑니다' '다음 주 빌드에 들어가야 해요' 밤 작업은 데드라인이 없다. 만족할 때까지 한다. 물론 다음 날 출근이 데드라인이긴 하다. 근데 그건 나중 일이다. 지금은 그림에만 집중한다. 손목이 아프다. 허리도 아프다. 눈도 뻑뻑하다. 근데 멈출 수가 없다.아침 6시의 저장 버튼 하늘이 밝아진다. '아 망했다' 생각이 든다. 저장 누른다. PSD로, JPG로, 트위터용 PNG로. 침대에 눕는다. 8시 반에 알람 맞춰뒀다. 2시간 반 잘 수 있다. 눈을 감는다. 근데 그림이 보인다. '저기 터치 좀 더 넣을걸' '색감 좀 더 조정할걸' 다시 일어나서 5분만 더 한다. 20분 지나있다. 진짜 저장한다. 침대 들어간다. 만족스럽다. 피곤하지만 개운하다. 회사 일 10시간 하고 느끼는 피곤이랑 다르다. 이건 내가 선택한 피곤이다. 출근길의 좀비 모드 알람 소리. 손으로 더듬어서 끈다. 2시간 잤다. 일어나야 한다. 사워 10분, 옷 입기 5분, 나가기 3분. 지하철에서 또 잔다. 회사 도착. 커피 뽑는다. 더블샷. 팀장이 본다. "어제 또 샜어?" "네..." "얼굴에 다 써있어. 일찍 자." 안다. 나도 안다. 근데 오늘 밤에도 할 것 같다. 책상에 앉는다. 모니터 켠다. 어제 퇴근 전에 하던 작업. '전사 캐릭터 갑옷 디테일 수정 6차' 슬랙에 메시지 떴다. "어제 5차안 검토했는데요, 어깨 장식 좀 더 과감하게 가면 안 될까요?" 한숨 나온다. 근데 오늘 밤엔 내 캐릭터 배경 넣을 거다. 판타지 숲 배경. 레퍼런스 벌써 50장 모았다. 그 생각에 버틴다. 수면 시간을 깎는 이유 왜 이러냐고 물으면 모른다. 돈도 안 된다. 트위터에 올려봤자 좋아요 100개. 커미션도 가끔. 건강도 안 좋아진다. 손목 의사가 쉬래도 안 쉰다. 눈 충혈 일상이다. 여자친구가 걱정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돼?" 해야 된다고 할 순 없다. 하고 싶다가 맞다. 회사 일만 하면 뭔가 비어있다. 내 그림을 안 그린 기분. 남의 기획서 따라 그린 기분. 밤에 내 그림 그리면 채워진다. 이게 내 정체성인 것 같다. '게임 회사 원화가'가 아니라 '그림 그리는 사람' 회사는 직업이다. 개인 작업은 나다. 그래서 잠을 깎는다. 언젠가는 바뀔까 이대로 평생 갈 순 없다. 30 넘으면 체력 떨어진다던데. 결혼하면 시간 없다던데. 지금 선배들 보면 안 그린다. "나도 옛날엔 그랬지" 한다. "나이 들면 알아" 한다. 무섭다. 개인 작업 안 하는 나를 상상한다. 퇴근하고 TV 보고 자는 나. 그게 정상인가. 나는 왜 그게 안 되나. AI 그림 나오면서 더 조급해졌다. '지금 안 그리면 언제 그리나' '내 스타일 확립해야 하는데' 그래서 더 깎는다. 수면을. 건강을. 내일의 컨디션을. 오늘의 그림을 위해. 그래도 그만둘 수 없다 새벽 6시. 또 그렸다. 내일 또 좀비로 출근한다. 팀장한테 또 잔소리 들을 거다. 근데 괜찮다. 저장한 PSD 파일 본다. 레이어 87개. 작업 시간 7시간 32분. 결과물 본다. 만족스럽다. 회사 일 100시간 해도 못 느끼는 거. 이 한 장에 있다. 트위터에 올린다. "새벽 작업 완성" 30분 만에 좋아요 50개. 댓글 몇 개 달린다. "그림체 사랑해요" "채색 미쳤다" 이맛에 한다. 잠을 깎는 건 대가가 아니다. 투자다. 미래의 나를 위한. 프리랜서 포트폴리오를 위한. 아니면 그냥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살기 위한. 침대 들어간다. 2시간 후 알람. 눈 감기 전에 생각한다. '오늘 밤엔 뭐 그릴까'출근은 좀비로, 퇴근은 화가로. 이게 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