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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전 10시 출근, 팀장님이 이미 3개의 피드백을 준 상황

월요일 오전 10시 출근, 팀장님이 이미 3개의 피드백을 준 상황

월요일 오전 10시, 피드백 3개 금요일 저녁의 착각 금요일 오후 6시. 컨셉 3개 업로드했다. 전사 캐릭터 A안, B안, C안. 팀장님께 슬랙 드렸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7시에 퇴근했다. 주말 동안 피드백 올 거다. 월요일 아침에 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토요일은 여자친구랑 영화 봤다. 일요일은 개인 작업했다. 판타지 기사 팬아트. 트위터에 올렸더니 좋아요 300개 넘게 받았다. 기분 좋게 잤다. 월요일은 가볍게 수정 작업만 하면 되겠지.월요일 오전 9시 50분 지하철에서 슬랙 켰다. 팀장님 메시지. 어젯밤 11시. "디자님, 주말에 기획팀이랑 얘기했는데요." 심장이 내려갔다. "컨셉 방향 조금 바뀌었어요. 월요일 아침에 얘기해요." 아침에 얘기하자는 건 길다는 뜻이다. 조금 바뀌었다는 건 많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지하철 안. 사람들 많다. 나만 식은땀 났다. 10시 정각 자리에 앉았다. 모니터 켰다. 슬랙에 팀장님 호출. "디자님, 회의실 1분만요." 커피도 못 마셨다. 회의실. 팀장님, 기획팀장님, 아트디렉터님. 셋이 앉아 있다. "앉으세요. 금요일 컨셉들 잘 봤어요." 잘 봤다는 말 뒤에는 항상 '그런데'가 온다. "그런데 주말에 PD님이 방향 바꾸자고 하셨어요."피드백 1: 컨셉 전체 "전사 컨셉인데, 너무 정통 판타지예요." A안, B안, C안 모두 정통 판타지다. 기획서에 '중세 유럽 느낌의 전사'라고 써 있었다. "좀 더 현대적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사이버펑크 섞어서." 사이버펑크. 금요일에는 한 마디도 없었다. "갑옷은 유지하되, 네온 느낌? 그런 거요." 네온 갑옷. 머릿속으로 상상이 안 간다. "레퍼런스 좀 찾아볼게요." "네, 급하니까 오늘 중으로 러프만 보여주세요." 오늘 중으로. 월요일 하루 만에. 피드백 2: 실루엣 "그리고 실루엣이 약해요. 멀리서 봤을 때 임팩트가 없어요." 아트디렉터님이 말씀하셨다. "어깨 라인 키우고, 무기 크게 가져가세요." 어깨 키우면 목이 파묻힌다. 무기 키우면 비율이 이상해진다. "근데 이 캐릭터 민첩형 아니었나요?" "맞는데, 민첩해 보이면서도 강해 보여야 해요." 민첩하면서 강하게. 가늘면서 굵게. 말은 쉽다. "네, 다시 잡아볼게요."피드백 3: 디테일 기획팀장님 차례. "벨트 부분이요, 너무 심플해요. 뭔가 스토리가 있는 아이템을 달았으면." 벨트에 스토리. "예를 들면 전쟁에서 얻은 트로피라던가, 가문의 문장이라던가." 디테일 추가하면 작업 시간 2배다. 러프에 그런 거까지 넣으라는 건가. "그리고 색감이 너무 차가워요. 따뜻하게 가면 안 될까요?" 따뜻한 사이버펑크. 모순 아닌가. "따뜻한 네온...? 오렌지 톤으로 가볼까요?" "그렇죠! 오렌지, 노란색 계열. 따뜻하면서도 미래적인." 미래는 차가운 거 아니었나. 회의 종료 30분 회의 끝. 메모장에 적은 것들.사이버펑크 + 중세 어깨 키우기 무기 크게 민첩하면서 강하게 벨트 스토리 디테일 따뜻한 네온이게 뭔 소린지 모르겠다. "오늘 6시까지 러프 3안 부탁드려요." 6시까지. 지금 10시 반. 점심 빼면 6시간. 한 안당 2시간. "네, 최선을 다해볼게요." 최선이 아니라 기적이 필요하다. 자리로 복귀 자리에 앉았다. 커피 식었다. 전자레인지 돌리러 가기 귀찮다. 슬랙에 같은 팀 선배가 물었다. "회의 어땠어?" "방향 바뀜. 처음부터." "ㅋㅋㅋ 월요일의 맛." 웃긴지 모르겠다. 레퍼런스 검색 시작. 'cyberpunk medieval armor' 'neon knight' 'futuristic warrior warm color' 나오는 건 다 AI 그림이다. 퀄리티는 좋다. 레퍼런스로 쓰기엔 애매하다. 아트스테이션 뒤적였다. 비슷한 컨셉 찾았다. 중국 아티스트 작품. 3년 전 거. 저장했다. 러프 작업 시작 11시. 1안 시작. 사이버펑크 감성을 갑옷에. 네온 라인을 어디에 넣을까. 어깨 갑옷? 가슴? 팔? 일단 다 넣어봤다. 크리스마스 트리 됐다. 지우고. 네온은 포인트만. 어깨 갑옷 테두리. 가슴 중앙 한 줄. 실루엣 키우려고 어깨 넓혔다. 목 파묻혔다. 목 길이 늘렸다. 이상해 보인다. 비율 다시 잡았다. 12시. 1안 러프 완성. 마음에 안 든다. 어쩔 수 없다. 점심시간 12시 반. 팀원들이랑 식당 갔다. 냉면 먹었다. 후배가 물었다. "형 컨셉 어떻게 돼요?" "응, 다시." "또요? 금요일 거 괜찮았는데." "기획 바뀜." "아..." 다들 안다. 이게 일상이라는 거. 선배가 말했다. "나도 지난주에 UI 7번 갈아엎었어." 위로가 안 된다. 모두가 고통받는다고 내 고통이 줄지 않는다. 오후 작업 1시 반. 2안 시작. 1안보다 어깨 더 키웠다. 망토 추가했다. 실루엣 임팩트용. 무기는 대검. 1안보다 크게. 등신 대비 1:1.5. 들기 힘들어 보인다. "민첩하면서 강하게." 말이 안 된다. 그래도 그려야 한다. 벨트 디테일. 작은 파우치 3개. 가문 문장 메달. 뭔가 걸려 있는 것들. 3시. 2안 러프 완성. 1안보다 낫다.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 3안, 마지막 3시 반. 마지막 안. 1안과 2안의 중간으로 갔다. 어깨는 적당히. 무기는 한 손 반 검. 네온은 최소화. 갑옷 이음새에만. 망토는 짧게. 허리까지만. 벨트는 심플하게. 디테일은 나중에. 색감은 오렌지 베이스. 따뜻한 느낌. 네온은 청록색. 대비 효과. 5시. 3안 완성. 세 개 놓고 봤다. 3안이 제일 무난하다. 무난한 게 채택된다. 업로드 5시 반. 컨셉 3개 업로드. 팀장님께 슬랙. "러프 3안 올렸습니다." 답장 바로 왔다. "확인할게요." 10분 뒤. "3안이 좋네요. 이 방향으로 디테일 들어가세요." 역시 3안. "내일 오전까지 디테일 작업 가능할까요?" 내일 오전. 오늘 밤 야근 확정. "네, 해보겠습니다." 해보겠다는 건 하겠다는 뜻이다. 6시, 저녁 팀원들 하나씩 퇴근한다. 후배가 물었다. "형 퇴근이요?" "야근." "아... 고생하세요." 7시. 사무실에 나랑 선배 한 분. 선배도 UI 수정 중. 편의점 가서 삼각김밥 샀다. 참치마요 2개. 커피 한 캔. 자판기 커피 한 잔 더. 자리 돌아와서 먹었다. 야근 시작 7시 반. 디테일 작업 시작. 3안 러프 위에 레이어 쌓기. 갑옷 디테일. 흠집, 스크래치. 사용감 표현. 벨트 디테일. 파우치 하나하나. 금속 버클. 가죽 질감. 무기 디테일. 검날 문양. 손잡이 장식. 칼날 반사광. 네온 라인. 빛 번짐 효과. 글로우 레이어. 색상 보정. 망토 주름. 바람에 날리는 느낌. 움직임 표현. 9시. 얼추 나왔다. 배경 간단히. 그라데이션. 바닥 그림자. 전체 색보정. 채도 올리고. 명암 대비. 10시. 완성. 저장. PNG, PSD 둘 다. 백업 폴더에 복사. 팀장님께 슬랙. "디테일 작업 완료했습니다." 답장 없다. 퇴근하셨겠지. 내일 아침에 보시겠지. 11시, 퇴근 짐 챙겼다. 타블렛 끄고. 모니터 끄고. 불 끄고. 사무실 나왔다. 선배도 퇴근하셨다. 건물 밖. 11월 밤바람. 춥다. 편의점 들렀다. 맥주 한 캔 샀다. 집 가서 마실 거다. 지하철. 사람 없다. 앉아서 폰 봤다. 트위터. 주말에 올린 팬아트. 좋아요 500개 넘었다. 댓글 몇 개 읽었다. "그림 너무 좋아요" "색감이 따뜻해요" "캐릭터 매력 있어요" 고맙다. 이래서 그림 그린다. 회사 일은 또 다르다. 내 그림이 아니다. 기획 의도를 그리는 거다. 클라이언트는 팀장님이고 PD님이다. 그래도 월급 받는다. 생활 할 수 있다. 장비 살 수 있다. 개인 작업은 취미다. 돈 안 되도 그린다. 집, 12시 집 도착. 샤워했다. 맥주 땄다. 침대 앉아서 마셨다. 하루 정리. 금요일 컨셉 3개. 주말 사이 기획 변경. 월요일 아침 피드백 3개. 6시간에 러프 3안. 야근해서 디테일 완성. 이게 일상이다. 내일 아침. 팀장님이 확인하신다. 괜찮다고 하실까. 수정 또 나올까. 수정 나와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일이다. 맥주 다 마셨다. 캔 버렸다. 침대 누웠다. 천장 봤다. 손목 아프다. 내일도 그려야 한다. 핸드폰 봤다. 트위터. 팔로워 몇 명 늘었다. 개인 작업 생각했다. 판타지 기사 시리즈. 이어 그리고 싶다. 주말에 그릴까. 아니다. 주말에도 피드백 올 거다. 눈 감았다. 내일 또 월요일 같겠지. 화요일인데.월요일은 언제나 수정으로 시작한다. 금요일의 나는 너무 순진했다.